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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안녕하세요 옆집 아저씨 1
안녕하세요 옆집 아저씨 1 비가 내린다. 창밖은 낮인데도 아직 어두웠다. 원룸안은 비의 습기로 인해 눅눅한 냄새가 났다. 남정네가 사는 집이란 으레 그런 냄새가 나기 마련 이었지만 나는 냄새에 나름 민감한 편이라 탈취제를 구석구석 뿌렸다 뭐...그 녀석은 그런 냄새도 좋다며 굳이 뿌리지 말라고 했지만 역시 신경쓰이는건 신경쓰이는거다. 쿵쿵쿵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속옷 차림이었던 나 였지만 별로 개의치 않은채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열진 비에 젖어있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일어났어? 아흐 갑자기 비가 와서 다 젖어버렸어 녀석은 한참이나 어리지만 나에게는 반말로 대화한다. 그게 녀석을 처음 봤을 때 부터 그랬기에 그다지 버릇없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의 친근감의 표시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내 이름은 윤성한. 올해로 35살이다. 내 앞에 비에 젖은 강아지 같은 녀석은 장준혁. 이제 막 2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꼬마로만 보이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키 178에 68kg의 건장한 몸매는 티셔츠가 비에 젖은 바람에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슈퍼 갔다온거야? -응. 아저씨 배고프잖아. 내가 아침 만들어 주려고.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은 비닐 봉지를 흔들어보인다. 싱긋이 웃으며 가스레인지로 달려가는 녀석의 손목을 붙잡는다. 제법 운동을 했는지 잡기만 해도 녀석의 몸의 단단한 느낌이 전해졌다. -비 맞았잖아. 우선은 갈아입어.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 -괜찮은데. 별로 젖은 것도 아니라서... -얼른.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있는 자리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그것도 속옷까지. 아무리 한지붕 아래 사는 거라고는 하지만 그런 거에 있어서 녀석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당당해 져서는 내 앞에서 덜렁 덜렁 거리면서 원룸안을 휘젓고 다녔다. -아으. 벗으니까 춥다. -그러니까 얼른 옷입어. 여름에 감기걸리면 훨씬 고생한다 너. 오히려 내쪽이 민망해서 약간은 고개를 돌리고 그렇게 말하자. 녀석은 무언가 재밌는 것이라도 생각 났는지 싱긋이 웃으며 내쪽으로 다가 온다. -우왁!! 뭐하는 거야~!! -헤헤헤 따뜻하다. 아저씨도 팬티 바람이면서 나보고 뭐라그래. 녀석이 나를 확 끌어 안는 것이었다. 나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면서 녀석을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힘이 장사다. 얼마 전만해도 내 배꼽근처에서 놀던 녀석이 이렇게 커져버려서는 힘으로도 이길 수 없게 커버리다니. 새삼 시간이 빨리 흘러 간 걸 느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품에 꼭 안아주었다. 녀석은 헤헤헤 하고 웃을 뿐이었다. -아직은 아저씨 키를 못따라 잡았지만 이제 금방이야! 내 키는 녀석보다 3센치 큰 181. 그래 봤자 발꿈치 살짝 들면 같을 높이 였기에 별로 키차이가 나진 않았다. -남자 나이 스물이면 다큰거야. 준혁이가 날 이길일은 없을걸? 나는 히죽 거리며 괜히 놀려 댄다. 그러자 녀석은 미간을 살짝 지푸리더니 갑자기 손을 아래로 내린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아저씨 벌써 이겼는데? -야,야.. 너어...! 녀석의 손길이 내 아랫도리를 향했고 그 터치에 나도 모르게 조금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이미 준혁이의 그곳은 이미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부끄럽다. 귀엽기도 하고. 녀석의 말대로 거기 크기는 준혁이가 확실히 컸다. 배꼽까지 배렛나루도 보기 좋게 자라 있는게 그를 더욱 더 섹시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 눈엔 꼬마 장준혁일 뿐이었다. -녀석. 아침부터 기운을 거기로 써버리는 구나. -다 벗으니까 아저씨 팬티가 바로 닿아서 그런거야. 에취~! -이거봐. 너 벌써 감기 징조가 보이잖아. 다벗고 있으면 감기 걸린다니까. 나는 급한대로 아직 바닥에 개어놓지 않은 이불을 집어 녀석의 몸에 둘둘 감아 준다. 준혁이의 그곳은 여전히 성이나 이분이 불록하게 솟아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못본체 하고 녀석을 한번 더 꼭 안아주기만 한다. 녀석의 머리에서 비누냄새가 어렴 풋이 났다. 샴푸...떨어졌나? 나가서 사와야 겠다고 생각해둔다. -아저씨도 감기걸려.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 말고 있던 이불을 벌리고 나를 끌어 안는다. 누에 고치안에 두마리가 몸을 맡대고 있었다. 녀석의 그곳이 내 그곳과 맡닿았다. 이대로 있으면 나도 완전히 발기해버릴 것 만 같았다. 이성의 끈을 잡아야 한다 윤성한!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세번을 되새긴다. 하지만 녀석의 체취는 이불안에서 체열의 온기와 함께 올라온다. 정신이 아득해 진다. 내 그곳도 어느새 반정도 몸을 일으켰다. 나는 위험해 짐을 느끼며 성급히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녀석의 옷을 찾아 옷장을 뒤적 거렸다. 그리고 최대한 뒤를 의식하지 않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배고프다. 준혁이가 해주는 아침 밥은 얼마나 맛있으려나? 녀석은 말이 없다. 아마 내가 받아주지 않아 토라진 걸지도 모른다. 이런일이 종종 있곤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꿋꿋이 속옷과 츄리닝을 꺼내어 준혁이에게 건내 주었다. -아저씨 입혀줘. -야. 장준혁~ 너 스무살이나 돼놓고 입혀줘가 뭐야. 애도 아니고 -다리 다친곳이 아파서 그래~ 얼르은~~! 녀석이 애교를 피우며 칭얼 거린다. 역시 덩치만 컸지 아직 어린애다. -속옷 정도는 입을 수 있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속옷을 건낸다. 준혁이를 마주하자 녀석의 그곳과 눈높이가 비슷하다. 너무 가까웠다. 나는 숨을 들이마치며 시선은 살짝 피하자 녀석은 속옷을 입는다. 다입고 나서도 여전히 윤곽이 또렷이 보였지만 애써 태연하게 나는 바지를 말아 발을 넣으라고 신호한다. -한달전에 다친 다리가 아직도 않나아서 큰일이네~ 녀석은 사실 다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주말에 아침장까지 봐온게 기특해서 바지를 입혀주었다. 다입혀주니 위에 티는 알아서 입는다. 녀석도 포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얼굴이 갑자기 가까워 지며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쪽 준혁이의 입술이 내 입에 닿는다.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가볍에 부딪히며 떨어졌다. -너도 참...허허 -조금만 기다려 아저씨. 내가 금방 밥 만들어 줄테니까!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앞치마를 두르고 본격적으로 아침을 만들기 시작한다. 서서히 퍼지는 음식 냄새에 집안의 눅눅한 냄새를 밀어내면서 내 행복감도 방안에 차오른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하는 녀석의 뒷모습. 정말이지... 많이 컸구나. 준혁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준혁이를 처음 봤던 그날도 비가 이렇게 오는 날이었었지. 라는 생각을하면서... 소설은 처음이네요.. 달달한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잘 될지 모르겠네요.ㅋㅋ; 읽어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그럼 2편에서 만나요~! ------------------------------------------------------ ©누텔라˚ 님의 글입니다. 저작권 : 누텔라˚ ------------------------------------------------------
2026-04-20
소설방
벚꽃 필 무렵 외전 (중) (펌)
'도망쳐야 해.' 본능처럼 몸을 돌려 달리려는 지운. 하지만 이번에는. “이번엔 절대 도망 못 가요." 태평은 지운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숨이 헐떡이고, 손바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글쎄...전 당신이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아프니까 놔주세요.." "이번엔... 놔줄 생각 없어요." "정말 왜이러세요!? 아니라니까!!" "...당신이야 말로 진짜 왜그래요?! 아직도 그때 일로 화가 나있는거에요...?! 잠깐만...이야기해요 네!?" 지운은 숨을 삼켰다. 손목을 붙잡은 태평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벚꽃이 어렴풋이 져가는 늦봄의 공기 속. 둘 사이에는 짙고, 뜨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지운은 순간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몰려오기를 기대하며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순간 태평은 재빠르게 다가와 지운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당황한 지운을 태평은 힘으로 제압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빼내려 했지만 여전히, 그 힘은 거역할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 지운은 결국 태평에게 이끌려 자신이 살고 있던 집으로 끌려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태평은 지운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손쉽게 가로막힌 지운은가슴이 미친 듯 뛰는 걸 느꼈다. 태평은 숨을 고르며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한 가지만 확인할게요...." 태평은 떨리는 손으로 지운의 겉옷을 들추려 했다. 지운은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이미 드러난, 왼쪽 갈비뼈 아래에 새겨진 오래된 화상 자국. 태평은 그걸 보는 순간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운은 본능적으로 다시 도망치려 했지만 태평이 지운의 손목을 꽉 잡았다. "..." "...신고하기전에 놔요....." "일본어 집어쳐요..." 태평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한국말로 해요." 지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이며 어렵게 말했다. "...잘... 지냈어요...?" "잘 지냈어요? 잘 지냈냐고요!? 그래요...당신 눈엔 내가 어때 보여요?! 예!?" 태평은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허탈감,분노,슬픔,애정 그 모든 감정이 뒤섞여서 터져 나왔다. 지운은 잠시 고개를 떨군 채,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어쩌면 자신 역시 언젠가 한 번은 이렇게모든 걸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태평은 헐떡이듯 숨을 몰아쉬며 지운에게 다가섰다. "왜?!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왜?! 그렇게 혼자 다 짊어졌어요? 왜?! 나한텐 한 번도 기대지 않았어요...?!" 말 끝에 목소리가 떨렸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끝내 닿지 못할까 두려운 아이처럼. 지운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 눈 속에는 수없이 억눌러온 말들과 한없이 미안한 미소만이 담겨 있었다. "...태평씨를 망치고 싶진 않았어요...나하나 입다물고 없어지면 될일이였어요..." 그 한마디에 태평은 주저앉을 뻔했다.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자신을 지키기 위해 혼자 모든 걸 삼켜왔던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한참을 서 있던 태평은 이내 주저앉듯 지운 맞은편에 앉았다. 둘 사이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지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태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운은 작은 찻잔 두 개에 따뜻한 차를 따라 내어왔다. 찻잔 사이로 피어오르는 김이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둘 사이를 잠시 부드럽게 채웠다. 지운은 손에 쥔 찻잔을 매만지며 먼저 말했다. "10년... 꽤 긴 시간이었네요." 태평은 지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지운은 잠시 숨을 삼키듯 멈칫했지만, 곧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나도 안 변했어요... 태평씨는. 단번에 알아봤는걸요." 지운의 조용한 고백에 태평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지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때처럼 애송이 같진 않을 텐데." '애송이'라는 말에 지운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짧은 순간, 아주 소박한 미소였다. 그걸 눈치챈 태평은 지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상황이... 지금 재미있어요?" 지운은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 미안해요. 그런 건 아니고..."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하는 지운을 보며 태평은 알 수 없는 감정을 삼켰다. "그냥." 지운이 조심스럽게 이어 말했다 "태평씨랑 이렇게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지운의 말은 무겁지 않았지만, 그 안에 깃든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랜 시간 쌓여 있던 그리움과 후회, 그리고 미련이 섞인 목소리. 태평은 말없이 지운을 바라보았다.어쩌면 자신도, 이 순간이 꿈같다고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요." 태평은 조용히 대답했다.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조금 전과는 달랐다. 태평은 무언가 결심한 듯 지운의 손을 간절히 붙잡으며 말했다. "나랑 돌아가요... 나랑... 예전처럼... 그냥 아예 같이 살아요. 우리 그렇게 해요... 네?" 지운은 순간 가슴이 찡하게 저려왔다.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태평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아버렸다. "...안돼요." 지운은 눈을 피하지 않고, 태평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무너질 생각이에요? 태평씨는 항상 빛나야해요...그래야 하는 사람이니까...저라는 그림자와는 멀어져야 한다고요.." 그러자 태평은 놓쳤던 지운의 손을 다시 움켜쥐며 더 간절하게 말했다. "빛이있는곳엔 항상 그림자가 있는거 잖아요...... 그리고.. 그땐 몰랐어요. 그땐... 내 자리에 욕심이 났어요. 그땐... 내가 멍청했어요. 그땐..." 태평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어갔다. 지운은 말없이, 그 모든 걸 가만히 들어주었다. "다 필요 없어요....." 태평은 이마를 떨구듯 숙이며 낮게 중얼거렸다. "10년 동안, 당신을 잊으려고 미친 듯이 일만 했어요. 미친 사람처럼." "..." "그럴수록...먹고 살만해지고... 풍요로워지고... 나름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 같지만...이제는...모르겠어요..왜 이렇게 까지 열심히 살았는지...." 태평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고통을 억누르듯, 떨리는 손끝이 보였다. "다 필요 없어요... 이젠... 다..." 목이 메인 태평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 너무 괴롭고 아파요... 여기가..." 태평은 손으로 가슴을 퍽퍽 치더니, 결국 무릎을 꿇었다. "제발..." 태평은 간절한 눈으로 지운을 올려다보았다. "...나 좀... 용서해주면 안 돼요...? 나 좀... 도와주면 안 돼요? 그때처럼..." 태평의 목소리는 떨렸고,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 모습에 지운의 심장도 뭉그러지는 듯 아팠다. 하지만 지운은 아직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그들 사이에 남긴 상처나 처한 상황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운은 끝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태평은 참았던 감정을 터뜨리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이렇게까지 매달리는데... 끝까지 모른척할 거에요?! 정말 그렇게 할 거에요?! 좋아요... 그럴 거라면..." 태평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울먹이며 소리쳤다. "차라리... 여기서 나를 죽여요... 당신 손으로 끝내버려요...! 어차피 그때...당신 아니였으면 죽었으니까..." 태평의 목소리는 떨리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다. "어차피... 당신 없는 세상에서, 제대로 살 자신 없으니까... 그러니까 제발...죽이든 살리든... 당신이 결정해요... 나 이제... 어떻게든 못 버텨요..." 태평의 절박한 외침에 지운은 움찔했지만, 끝내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마치 받아내겠다는 듯, 스스로 감당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태평은 결국 지운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다시는 놓치지않겠다는 의지를 품고말이다. 손끝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온 힘을 담아서. 자신을 어서 죽이라는듯 말이다. "아파요..." 지운이 낮게 신음하듯 말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태평은 황급히 손을 놓았다. 놓은 손끝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떨궜다. "미안해요..." 태평은 마치 자기를 질책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또 이렇게밖에 못하네요." 허공을 바라보며 태평은 조용히 깨달았다.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아무리 매달려도 결국 그건 지운을 더 아프게 할 뿐이라는 것을. 지운을 놓치고 싶지않아서 시작된 마음이, 이제는 지운을 다치게 하고 있었다는 걸. 태평은 두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섰다. "당신을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아요." 태평이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태평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 그 말에 지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다시 맞닿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에 깊은 상처와, 지독한 그리움이 교차했다. 태평은 조용히 숨을 고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갈게요." 태평은 고개를 숙였다. 손끝이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근데..." 태평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내일 또 올 거에요. 그다음날에도, 또 그다음날에도..." 지운은 눈을 감았다. 심장이 아려왔다. "언젠간... 당신이 나를 바라보고, 환히 웃어주며 안아줄 때까지." 태평은 그 말을 남기고, 조심스럽게 지운의 앞에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 미련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천천히 집을 빠져나갔다. 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지운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 막혔다. 어깨가 들썩였다. 목에서 새어 나온 것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서러운 울음이었다. "잘 지내셨군요..." 지운은 흐느끼며 중얼거렸다. "대견해요...원하신대로 배우로서 성공한 모습을.... 10년동안..이기적이게도...저는...태평씨가..정말.. 보고 싶었어요..."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떨며, 지운은 마지막 한 마디를 쏟아냈다. "나란 못난 사람... 그냥 버리세요... 제발..." 텅 빈 집안, 조용히, 그러나 아프게 울음이 퍼져나갔다. 도저히 밖으로 나설 수 없었던 지운은 결국 사치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한 사정이 생겨 오늘은 도와주지 못할 것 같다고 하자, 사치코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지운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그렇게 지운은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린 하루를 보냈다. 어디선가 피어나는 벚꽃 냄새가 더욱 쓸쓸함을 깊게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오늘은 정말 바쁠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료칸으로 향하려던 지운 앞에 태평이 있었다. 그대로, 멍하니 지운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지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이 나올 때까지요." 태평은 짧게 대답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에요..." "사립탐정 고용했어요." "...그거... 합법인가요...?" "그래서요?" 당돌하고 당연하다는 듯한 태평의 말투에, 지운은 어이없다는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10년 전, 풋풋하고 어리숙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뭔가 단단하고, 날카로워진 어른이 서 있었다. "...어디 가요? 나도 따라갈래요." 태평은 자연스럽게 말했다.지운은 난처했다.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미 료칸 쪽에는 출발했다는 연락도 해둔 터라, 더 미룰 수도 없었다. 결국 지운은 태평 때어놓지 못하고 료칸으로 향했다. 잠시후 도착한 태평은 지운에게 물었다. "여기서 일하는 거에요...? 그림은요...? 이런일 안해도 충분히 먹고 살만 하실텐데요?" 태평이 물었다. "...일하는 게 아니라... 은혜 입은 가족이라, 돕고 있을 뿐입니다." "은혜...?" 태평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바로 그때였다. "아저씨~!! 오늘은 오셨네요!"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히나. 그런데 지운 옆에 서 있는 태평을 본 히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3초간 멍하니 바라보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다다다...당신은...!!" 말까지 더듬으며 히나는 소리를 질렀다. "안녕하세요. 서태평입니다." 태평은 어설픈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며 씨익 웃었다. "보다시피 여기 '이 아저씨'랑 아주 '각별한' 사이라서요." 그 말에 히나는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터뜨렸다. 곧이어 히나의 친구들이 몰려와 태평을 보고는 또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료칸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웅성거렸고, 금세 작은 료칸이 머무는 손님들덕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 질려 도망쳤을 태평이었지만 이제는 능숙하게 팬들을 맞이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여유롭게 빠져나온 태평은 다시 지운과 마주했다. "...여기서 일을 돕는다구요...? 아~ 여기서 비자기간끝날때까지 머물러야지~" 의도적으로 태평이 일본어로 말하자 료칸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운은 난처한 표정으로 작게 대답했다. "...지금, 태평 씨 때문에 난처해진 거 안 보여요...? 얼른 가요. 가요." 그러자 태평은 얄밉게, 들으라는 듯 일본어로 외쳤다. "료칸, 엄청 좋아보이네요! 여기에서 당분간 묵어야겠어요! 주인분 누구세요?" 태평의 장난에 료칸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어졌고, 지운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고집을 꺾지 않는 태평을 막을 수는 없었다. 태평의 질문에 사치코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태평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여기서 묵을게요. 그리고..."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 요금을 일시불로, 현금으로 결제할게요." 현금을 세는 사치코의 손이 순간 굳어졌다. 그야말로 일반 손님 수개월치 매출을 단번에 내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료칸 손님 중 한 명이 유튜브로 생방송을 하고 있었던 것. "대박 사건! 넷플릭스 한류 스타, 조용한 료칸에 등장!" 이라는 제목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 결과, 평소 한적하던 료칸은 삽시간 안에 난리가 났다. 근처 주민들, 팬들, 심지어 방송국 리포터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운은 화들짝 놀라서 태평을 붙잡았다. "뭐 하는 거에요?! 호텔 놔두고 왜 여기서 묵겠다는 거예요?! 빨리 돌아가요!! 지금 태평 씨 때문에 료칸까지 난처해졌잖아요?!" 하지만 태평은 짓궂게 웃더니, 아까처럼 어설픈 일본어로 사치코를 향해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쩌죠...? 직원분이 나가라는데요...? 사장님?" 순간, 사치코는 애매한 표정으로 지운을 바라봤다. 울상이 되어가는 사치코 표정에 지운은 이악물고 웃는 얼굴로 어설픈 미소와 어설픈 일본어로 태평에게 고개 숙이며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손님..객실 안내를 해드릴게요..." 그러자 사치코는 조심스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 어쩔 수 없네요. 손님이시니까요." 사치코는 간만에 터진 엄청난 수입에 눈이 반짝였다. 비록 상황은 엉망이 되었지만 료칸에 이렇게 활기가 넘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지운은 이마를 짚으며 속으로 외쳤다. '아, 미치겠다 진짜...' 태평은 그런 지운의 속을 뻔히 알면서도, 가볍게 웃으며 옆에 딱 붙어섰다. "...앞으로 일본에 있는 동안, 매일매일 당신 얼굴 볼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은걸요. 비자기간 꽉꽉채워서 있을거니까..."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운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진짜, 대책 없는 사람...한국에 안돌아가요!? 바쁜사람이?! 소속사에선 뭐라 안하냐고요..." "그동안 휴가도 한번 제대로 못갔는데...방해하면 그냥 위약금내고 연예계 은퇴한다 했더니 대표님이 이악물고 허락해주시던데요?" "하..." 태평의 막무가내 행동에 지운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조금 따뜻해지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태평 때문에 바빠진 료칸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지운은 죽을 맛이었다. 오랜만에 온몸으로 육체노동에 시달리는 기분. 그런 지운이 원망스러운 듯 태평을 째려보면 태평은 팔짱을 낀 채 편안하게, 심지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천불이 난다, 진짜.’ 지운은 이를 악물고 청소기를 돌렸다. 료칸 앞은 이미 팬들과 연예기자, 방송국 관계자들로 인산인해. 그걸 본 사치코는 태평에게 조심스럽게 프라이빗 공간을 내줬다. 온천도 개인실, 식사도 조용히. 최대한 외부와 차단해줬지만 태평은 전혀 얌전히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졸졸 지운을 따라다녔다. 마치 어미새를 쫓는 아기새처럼. 지운이 바닥 청소를 마치면, 슬쩍 뒤에서 부스러기를 떨어뜨렸다. "..." 지운이 빡친 얼굴로 돌아보자, 태평은 피식 웃으며 속삭였다. "사람들이 보고 있어요. 손님한테 화내는 직원이라니~" 태평의 행동을 본 지운은 진짜,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미웠다. "아...좀 제발 가라고요!!...." 지운이 작게 속삭이자 태평은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지운을 약올리며 말했다. "표정펴요...무섭게~ 히히..." 한편, 히나와 친구들은 그 광경을 보며 수군댔다. "근데 히나, 나 궁금해." "응?" " 저 아저씨랑, 서태평은...대체 무슨 사이야? 티격태격하는 게... 무슨, 가족 같기도 하고..?" 히나는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했다. "음... 예전에 말했잖아. '각별한 사이'라고... 혹시 삼촌? 뭐, 그런 거 아닐까?" 히나는 한국에 대해 물으면 시무룩한 표정으로 쓸쓸하게 웃던 지운밖에 기억이 나지않아 본인도 궁금했다. 한편, 히데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툴툴거리며 지운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도와드릴까요?" "아, 히데. 사치코 씨는? 같이 뭐 한다고 하지 않았어?" "이제 괜찮대요. 아저씨 힘들어 보여서요." 지운은 히데의 마음 씀씀이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여기 치우자." 둘은 나란히 구석구석 청소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태평은 뭔가 질투심이라도 생긴건지, 슬금슬금 다가와 일부러 방해를 했다. "..." 히데는 그걸 보고 더는 참지 못하고 태평에게 정색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큭... 다 큰 어른이 유치하게..." "꼬맹아~ 어른들 비지니스란다..빠지렴" 태평이 순간 눈을 부라리자, 히데는 콧방귀를 뀌었다. "17살이 무슨 꼬맹입니까? 진짜 유치하긴." 지운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둘 사이를 말렸다. "둘 다, 그만해요. 여기서 싸우면... 사치코 씨한테 혼나요." 태평은 히데를 째려봤고, 히데는 아랑곳하지 않고 턱을 들었다. 지운은 그 둘을 번갈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골치 아픈 ‘큰애’ 하나랑, ‘작은애’ 하나. 어쩌다 이 꼴이 된 걸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따뜻했다. 저녁이 되어, 사치코와 지운, 그리고 히데, 히나, 히나의 친구들이 한 방에 모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 모여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던 그때였다. 문 밖에서 느껴지는 힐끔거리는 시선. 지운은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고개만 빼꼼 내밀고, 큰 눈을 반짝이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안을 바라보는 태평이 있었다. 마치, "나도... 나도 껴주면 안 돼요...?" 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지운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에휴..." 결국 지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태평에게 다가갔다. "같이 먹을래요?" 지운의 말에 태평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걸음에 따라나섰다. 지운이 태평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히나와 히나의 친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꺄아아악!!" "헤에에?!~ 혼또니?! 진짜 대박이야!!!" "살면서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갑자기 모두가 정좌 자세로 허리를 곧게 펴고, 품위 있는 척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태평의 옆자리에 앉고 싶은 듯, 은근히 자리다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상황을 슬쩍 훑어본 태평은, 씨익 웃더니 일부러 지운과 같이 앉아 있던 히데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운과 히데 사이에 턱하니 앉아버렸다. "뭐해요?! 진짜?! 자리도 많은데?!" 히데가 황당하다는듯 말하자 콧방귀뀌며 태평은 말했다. "숙녀분들이 불편할까봐요. 남자끼리 앉을게요~" 태평이 장난스러운 윙크까지 날리자 방 안은 터질 듯한 비명과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꺄아아아!!!" "죽을 것 같아 진짜 ㅠㅠㅠ" "심장 못 버텨!!!" 지운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 오늘 저녁 식사가 무사히 끝날 수나 있을까..." 한편, 옆에 끼어 앉은 히데는 태평을 노려보며 작게 투덜거렸다. "...유치해, 진짜." 태평은 히데를 보고 능글맞게 웃었다. "에이, 질투하는 거 아니야~ 꼬맹이?" 태평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재수없어, 바보자식!!" 히데가 발끈해버렸다. 그 말에 사치코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히데! 예의가 뭔지 몰라?! 당장 사과해!" 하지만 히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입술을 꾹 다물고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남겨진 분위기는 어색하게 얼어붙었다. 난처해진 지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히 히데의 뒤를 따라나갔다. 밖에 나가보니,히데는 팔짱을 낀 채 구석에서 툴툴거리며 서 있었다. "히데..." 지운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난 거야? 응?" 히데는 고개를 돌려 지운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 "...그야... 난 아저씨가 우리 아빠 같고 좋은데...자꾸 저 멍청이가 빼앗는 느낌이란 말이에요..." 지운은 순간, 가슴이 아릿해졌다. 한참을 말없이 히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히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마음 넓은 히데니까, 이해해주자. 응?" 히데는 시무룩한 얼굴로 끄덕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다시 물었다. "...근데, 아저씨.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에요?" 지운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히데처럼, 나를 많이 의지했던 사람이야. 사정이 있어서... 서로 멀어졌던." 히데는 말없이 지운을 뚫어져라 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아저씨를 봐서라도... 참을게요." 그렇게 둘이 다시 돌아가려던 순간. 지운은 문틈 사이로 엿듣고 있던 태평과 눈이 마주쳤다. "...잠깐 이야기해요." 태평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히데를 먼저 방 안으로 들여보낸 뒤, 지운과 태평은 마주 섰다. 태평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이곳에 삶의 자리 잡은 거에요?" 지운은 잠시 창밖을 보다가, 작게 대답했다. "...10년 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어요." 태평은 그 말에, 뭔가 조여오는 불안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란 사람은 참..." 태평은 고개를 저었다. "...애 아버지는요?" 지운은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돌아가셨어요." 그 말에 태평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지금도... 저나 당신 같은 사람들을 그냥 아낌없이 다주겠단 거에요?" "나는..." 지운이 조용히 답했다. "그게 내 천성인걸요....그 덕에, 태평씨도 만났고." 그 말에,태평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지운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 밤, 태평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흔들리게 하는 걸까. 아니면... 이미 당신은 이곳에서, 따뜻한 안식을 찾은 걸까.' 태평은 그런 찝찝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다시 방으로 돌아가 씩 웃으며 히나와 친구들에게 인사와 식사를 끝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하지만 방 안에 들어서자, 웃음기는 싹 사라졌다. 잠자리에 털썩 앉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라는 사람, 난 아직도 이렇게 모르는 게 많구나.' 한참을 그렇게 고민에 잠겨 있던 순간이었다. 톡톡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평씨... 저예요." 지운의 목소리였다. "들어오세요!" 태평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연 지운은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말했다. "...오늘은 돌아가고...내일 다시 올게요. 그러니까 오늘은 얌전히 여기 있다가, 귀국날짜 되면 무사히...얌전히..돌아가셔야 해요." "…내일... 다시 온다고요?" "네. 새삼스럽게... 저도 집에 가서 자야죠?" 그 말에 태평은 조금 뾰로통한 표정으로 지운을 빤히 바라보다가, 어리광을 부리듯 투덜거렸다. "아니, 그러면... 여기서 묵는 의미가 없잖아요. 난 당신도 오늘 같이 여기 있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안돼요. 무조건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요. 그때처럼...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왜 저래..." 지운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작게 웃어버렸다. "태평씨, 올해 서른넷 아닌가요?" "…그래서요...?." 태평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결국 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 한쪽에 앉았다. "…좋아요. 잠들기 전까지만 있을게요." "안 자야지, 그럼." 태평은 작게 으쓱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둘은 오랜만에 조심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밤이 깊어갔고, 태평은 벌떡 일어나 말했다. "그래도 료칸까지 왔는데, 사치코씨 배려 덕에 개인 온천까지 딸렸잖아요. 몸이라도 한번 담그고 자야죠." "그래요... 그럼 푹 쉬세요. 저는,,," "...어디 가요?" 태평은 쓱 다가오더니 지운의 뒷덜미를 가볍게 잡았다. "당연히 같이 가야죠." "전 괜찮은..." 태평의 고집에 결국, 질질 끌리듯 태평에게 이끌린 지운은, 어쩔 수 없이 함께 탈의를 하고 온천으로 들어갔다. "후...그때 처럼...같이 씻어보네요...정말 오랜만이네요...이 느낌...그리웠는데.." "..." 따끈한 물이 몸을 감싸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지만 지운은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태평을 바라봤다. 태평은 그런 지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지운의 몸에 남은 화상 흉터를 쳐다보았다. "...그 흉터, 여전하네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국 돌아가면, 수술할까요? 피부과 좋은 데 알아놨거든요...언젠간 그 상처 꼭 내가 치료해 줘야지하구요..." 지운은 짧게 웃었다. "...한국에 간다는 말, 아직 안 했는데요. 은근슬쩍 같이 돌아갈생각하지마요..." 태평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툴툴거렸다. "쳇...들켰네..어휴..." 그러다 문득, 진지한 눈빛으로 지운을 바라보았다. 물에 비친 지운의 모습은 여전히 선명했고, 태평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운 쪽으로 다가갔다. 지운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곧 벽에 닿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왜 이렇게 도망가요?" 태평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까이 오지 마요." 지운은 간신히 말했다. "왜요?" 태평은 물끄러미 지운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온천의 수증기 사이, 두 사람의 거리는 서서히 좁혀졌다. 태평은 조심스레 다가왔다. 10년 전 그날처럼 그토록 소중히 했던 손길로 지운의 양 볼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사랑해요..." 작은 목소리였지만, 말끝에 담긴 진심은 무겁고도 선명했다. 태평은 이내 지운의 고개를 끌어당겨 자신의 왼쪽 가슴에 조심스럽게 기댔다. 따뜻한 체온, 그리고 고동치는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저작권 : 마늘바게트 님. ============================
2026-04-27
소설방
벚꽃 필 무렵 외전(상) (펌)
시작하기 앞서서...https://www.youtube.com/watch?v=mQP8jL3lwGs 요링크를 타고 들어가시면 이번 소설과 어울리는 브금을 찾았어요...들으면서 감상하면...몰입이 정말 잘되드라구요... --------------------------------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서서히 작은 섬들과 도시의 불빛으로 바뀌어 갔다. 지운은 조용히 창문을 바라보며 오랜 숨을 삼켰다. '이제 정말… 돌아갈 수 없겠지.'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운은 무사히 일본에 도착했다. 긴 비행과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터미널을 걸었다. 도착 게이트 앞, 익숙한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지운의 유학시절 꽤나 친하게 지냈던 야마토였다. 유학 시절, 유럽에서 인종차별과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묵묵히 서로의 편이 되어주던 친구였다. 오랜만에 보는 야모토의 얼굴에, 지운은 마음 깊은 곳이 조금 놓이는 것을 느꼈다. “지운!!” 야모토는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지운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일본어) “진짜 왔구나, 너.” “…왔지. 또 이렇게 기대게 됐네, 미안해.” 지운은 어설프고 불안전한 일본어를 힘겹게 뱉어내자 야마토는 껄걸 웃더니 말했다. “지운! 제법 일본어가 늘었네? 아직 어색하지만...미안해할 거 없어. 우리는 친구잖아.” 야모토의 말에 지운은 처음으로,일본 땅 위에서 작은 미소를 지었다. "...건너건너 소식 들었어. 무혐의 받았다면서도… 그렇게까지 온갖 사람들이 못살게 굴었다며? 결국… 여기까지 도망친 거야?" 차창 너머 비에 젖은 거리.지운은 잠시 말이 없었다. 무혐의가 뜬건 맞지만 어쨋든 청탁을 위해 그림을 넘긴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였다. 그렇기에 지운은 당당 할 순없어 말을 하진않았다. 야모토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툭 내쉬며 부드럽게 덧붙였다. "여긴 괜찮을 거야. 네가 다시 숨 쉴 수 있을 만큼은." 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숨을 쉬듯. 가끔은 아무 말 없는 위로가, 가장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서자 부드럽게 쏟아지는 봄비가 지운의 어깨를 살짝 적셨다. 새로운 땅,새로운 시작. 이곳이 지운이 다시 살아야 할 세상이었다. "다행이 차를 가져와서...젖진 않겟네...지운! 타자 어서." 지운은 야마토덕에 차를 얻어타며 둘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었다. 지운의 일본어 실력은 뛰어나지 못했기에 대화가 막힐 만하면 영어나 불어로 대화를 하곤 했다. "미안...일본어 실력이 형편없지..?" "솔직히...응.." "..." 야마토는 지운의 표정을 보더니 껄껄 웃으며 말했다. "표정봐...괜찮아! 공부하고 익숙해지면 되는거야!" 야마토는 핸들을 돌리며 슬쩍 지운을 바라봤다. “지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지운은 창밖으로 스쳐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응… 일본에서 좀 살아볼까 해.” “헤에? 진짜? 그럼 완전한 이민을 생각한 거야?” 지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금은 쓸쓸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조금 오래 머물고 싶어서.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도움을 좀 청하고 싶었어.” 야마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당연히 도와야지.” 야마토의 도움 덕분에 지운은 일본 내 문화활동 비자를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다. 유럽과 한국에서의 수상 경력, 그리고 오명이 완전히 씻기지 못했지만...여전히 남아 있는 명성 덕분이었다. 오명은 있었지만, 그보다 앞서는 그의 작품성과 이력은 일본에서도 통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정리해온 재산 덕분에 금전적 여유도 어느 정도 갖춘 상태였다. “아직 지낼 곳은 정하지 않은 거지?” 야마토의 물음에 지운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당분간은 호텔에라도 머물까 생각했어.” 야마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럴 거 뭐 있어. 우리 집 료칸으로 가자.” “료칸…?” “응! 내 와이프 알지? 사치코. 그 집안이 대대로 운영하는 곳이야.” 지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사치코 씨가 그랬었지.” 그렇게 해서, 지운은 야마토 가족이 운영하는 공항 인근소도시의 작은 산속 료칸으로 향하게 되었다. 고요하고 향긋한 숲냄새가 나는 숲길을 지나작은 시냇물을 건너 나무향 가득한 마을로 들어섰다. 료칸의 지붕은 이끼로 덮여 있었고, 붉은 등롱이 조용히 빛을 내고 있었다. '여기라면…조금쯤은 숨 쉴 수 있을지도 몰라.' 지운은 창밖을 바라보며 가만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지운의 삶은 시작되었다. 료칸에 도착한 지운을, 야마토는 환하게 웃으며 가족들에게 소개했다. “자, 우리 가족! 이쪽은 지운. 내 소중한 친구야.” 이미 몇 번 만난 적 있던 사치코는 따뜻한 미소로 지운을 맞아주었다. “어서 와요, 지운 씨. 편하게 생각해요.” 곁에 서 있던 야마토의 아이들 일곱 살 히데와 열 살 히나는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지운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아저씨...말투가 너무 이상해...부에~~~" "히나! 어른한테 그런말은 못써! 자~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사치코가 히나를 나무라자 히나는 지운을 바라보며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렇게, 야마토 가족과 함께하는 조용한 시간이 이어졌다. 지운은 료칸 한쪽에서 작은 방을 얻어 지내며 조금씩 일본 생활에 적응해갔다. 시간이 지나, 지운은 료칸이 있는 작은 마을에 자신만의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작은 정원이 딸린,작고 아늑한 집. 야마토 가족과는 여전히 자주 왕래했다. 가끔은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고, 가끔은 함께 저녁을 나누며 조금씩, 조금씩 삶이 안정되어갔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봄·여름·가을·겨울이 다시 돌아오던 지운이 일본에 온지 3년째 되던 해였다. 갑작스러운 사고. 야마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 사치코는 무너진 사람처럼 오열했고, 히데와 히나는 작은 어깨를 떨며 울음을 삼켰다. 지운은 그들 곁을 지켰다. 서툴렀지만, 늘어난 일본어로 장례 준비를 도왔고,사치코를 부축했다. 야마토의 마지막을 함께 정리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야마토가 남긴 따뜻함을 그대로 갚고 싶었다. 그래서 지운은 사치코와 아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야마토대신 운동회에도 참석하고, 아이들의 생일에도 함께하며, 히데와 히나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너무 외롭게 느끼지 않도록 조용히 곁을 지켰다. 지운은 알았다. 야마토를 대신할 순 없지만, 따뜻한 기억이 되어줄 순 있다는 걸. 애석하게도,지운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것처럼, '아버지'라는 이름 아래 남겨진 상처가 아이들의 삶을 무너뜨리는 걸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비록 다른 의미였지만 가족을 잃고 상처받는 고통이 어떤 파장을 남기는지, 지운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지운은 점점,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치코와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운동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학예회에도 얼굴을 비췄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끼지 않도록, 사치코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그는 어설픈 '대체물'이 되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받을 수 없었던 따뜻함을 그들에게만은 지키고 싶었다. 지운의 삶은 그렇게, 누군가를 지켜주는 일로조용히 채워지고 있었다. 예전 태평에게 그랬던 것처럼...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헌신은 다했다. 이 조용한 마을에서, 그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일본 땅을 처음 밟았던 날로부터 벌써 10년. 이제 지운은 50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어쩐지 나이의 숫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희미하게 스쳐가는 새치 몇 가닥, 미간에 살짝 자리잡은 잔주름 하나. 그뿐이었다. 겉모습은 여전히 세월을 비껴간 사람처럼 조용히, 고요하게 서 있었다. 마치 혼자서 그날 이후로 시간이 멈춘듯이 말이다. 어쩌면, 지운은 '살아낸' 것이 아니라 '견뎌낸'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상처들은 여전히 아물지 않았고, 그러나 그 상처를 끌어안은 채,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뿐. '나이 든다는 건, 시간에 젖어도 부서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겠지.' 지운은 종종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집, 손때 묻은 아틀리에. 가끔은 캔버스 앞에 앉아 하루를 채우는 조용한 삶. 봄이면 벚꽃이 흩날리고, 여름이면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바람을 타고 흐르고, 겨울이면 고요한 눈이 세상을 덮었다. 그 모든 계절을, 지운은 천천히, 묵묵히 지나왔다. 그리고. 운명이 다시그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년 만에, 의자에 앉아 창밖 날씨를 감상하던 지운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운은 익숙한 이름을 확인하곤 밝게 전화를 받았다. “사치코 씨?” 반가운 목소리에 사치코 역시 환하게 웃었다. “지운 씨, 혹시 오늘 시간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사치코가 기쁜 소식 하나를 전했다. “히나가 집에 온다네요? 방학이라… 친구들 몇 명이랑 고향에 오기로 했대요.” 히나...야마토와 사치코의 딸. 지운은 잠시 놀랐다가 금세 미소를 지었다. “아, 그래요? 그럼 당장 갈게요. 히나가 온다는데야, 당연히 가야죠.” 히나는 학업에 열중했다. 먼저 떠난 자신의 아빠와 엄마를 위해서라도 자랑스러운 딸이되고자 하였다. 그결과...일본내에 최고의 명문대인 도쿄 대학에 진학해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부쩍 자라난 히나는사치코와 지운 모두에게 자랑이자, 애틋한 존재였다. 그 아이가 오랜만에 돌아온다니 지운의 마음 한구석도 따스하게 일렁였다. 휴대폰을 끊고, 지운은 오랜만에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료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결에 벚꽃잎이 흩날렸다. 그날처럼. 지운은 흩날리는 벚꽃을 보더니 잠시 추억에 잠기는듯 했다. '당신이...너무좋아요...' 잠시 깊은 추억에 빠졌던 지운이 문득 정신을 차리며 다시금 료칸으로 향했다. 분명 충분히 잊혀질 만큼 시간이 흘렀음에도 매년 벚꽃을 볼때마다 또렷한 기억과 함께 눈가가 촉촉해졌다. 지운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다시한번 가다듬고 료칸으로 향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날이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지운이 료칸에 도착하자 히데는 사치코와 사소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히데는 어느덧 열일곱 살이 되어 있었다. 사춘기의 문턱에 선 그는 세상 모든 것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세상을 대했지만, 이상하게도 지운 앞에서는 언제나 공손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였다. 지운은 가끔 생각했다. '혹시... 나를 아버지처럼 여기는 걸까.' 그런 마음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며 그저 조용히 히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료칸 안은, 히나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작은 긴장감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리고 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나!" 사치코는 애타게 기다린 사람처럼 딸을 끌어안았다. 히나는 까르르 웃으며 사치코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운 듯 웃으며 지운 쪽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그래, 히나. 반가워." 지운은 따뜻하게 웃으며 히나를 반겼다. 곧이어, 히나는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했다. 활기찬 얼굴의 대학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에너지로 료칸 안이 금세 북적거렸다. "그나저나..." 사치코가 히나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갑자기 웬 친구들을 이렇게 데려온 거야?" 히나는 신나서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몰랐죠? 세상에, 우리 마을에서! 넷플릭스 대박 드라마 '너를 건너 바다를 건너' 시즌2를 촬영한다는 거예요!" 최근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 로맨스' 드라마.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 전역에 알려졌고,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히트를 치고 있었다. 게다가, 요즘 부는 한류 열풍까지 더해져 촬영 소식 하나에 온 마을이 들썩이고 있었다. 지운은 멍하니 히나와 친구들의 열띤 대화를 들었다. TV도, 넷플릭스도, 한국 관련 소식도 철저히 외면하고 살아온 지난 10년. 그에겐 그저 조금 먼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히나와 친구들은 마치 아이돌을 기다리는 팬들처럼 드라마 속 남주 이야기에 환호했다. "진짜 잘생겼잖아!" "연기력도 최고야!" "이번 시즌2도 무조건 대박!" 그런 누나를 보고 히데는 못마땅하다는 듯 툴툴거리며 팔짱을 꼈다. "흥.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하지만 그 투덜거리는 히데 조차도 은근히 기대가 된듯한 느낌적인 느낌이였다. 이 집안에 흐르는 오랜 평화 같았다. 료칸은 덕분에 한동안 손님들로 더욱 붐빌 예정이었다. 벌써 전화 예약 문의가 폭주를 하고 있어서 사치코는 하루종일 전화기 앞에서 절절 매었다. 그런 모습을 본 히나는 친구들에게 공짜로 묵는 대신 좀만 도와줄 수 있냐물으니 다들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히나와 친구들도, 드라마 촬영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이곳저곳을 들썩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운은 조용히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활기찬 게 좋지.' 그는 아직 몰랐다. 곧, 그 활기 속에서 자신이 도망쳐왔던 과거와다시 마주하게 될 거라는 걸. 아주 가까운 곳에서. 며칠 후, 드디어 촬영팀이 마을에 도착했다. 평소엔 고즈넉하던 작은 마을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들썩였다. 카메라를 든 팬들과 유튜버, 기자들까지 몰려들어 마을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덕에 치안유지가 걱정되었던 마을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경찰이 대거 투입되었고 경찰에 의해 촬영지는 철저히 보안유지가 되고 있었다. “와… 이래도 돼? 마을주민아니면...출입막는거 같던데...” 히나의 친구들이 걱정스럽게 둘러보자 히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걱정 마! 다 계획이 있으니까. 나만따라오라구~" 그 말을 들은 히데는 팔짱을 끼고 비꼬듯 말했다. “꼴값 좀 작작 떨어라, 히나.” 그럼에도,히데는 발끝을 들썩이며 은근히 따라가고 싶어 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지운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 둘이 있으면 아무래도 든든하잖아. 여자애들끼리만 가는 건 좀 위험하니까." 히데는 한껏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결국 마지못해 지운을 따라 나섰다. 출발하는 순간, 사치코가 마당 끝에서 소리쳤다. "저녁 되기 전에 돌아와야 해! 그때부터 료칸 손님들 몰려온단 말이야!" 다들 "네~" 하고 대답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촬영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은 이미 경찰들이 통제선을 치고 질서를 유지하느라 분주했다. 사실, 마을 주민이 아니라면 촬영지 근처로 접근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히나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친구들을 이끌고 전진했다. 마침 통제를 맡고 있던 경찰은 히나를 알아봤다. 어릴 때부터 마을에서 자란 히나.경찰은 히나에게 슬쩍 눈짓을 보내며 말없이 길을 열어주었다. 이런 한적한 시골마을에 도쿄대 진학이라니 히나는 나름 마을에 자랑거리였다. 그렇기에 히나를 알아본 경찰은 히나의 편의를 봐주었다. "마을 주민 통행 인정." 그 덕분에, 히나와 친구들은 어렵지 않게 촬영장 바로 근처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 떨어진 거리.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촬영 현장. 카메라 세팅이 한창이었고,조명과 붐마이크가 높게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주인공들이 대사를 맞춰보는 모습이 보였다. 히나는 물론,친구들 모두 눈을 반짝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 봐! 진짜 실물이 더 멋있어!” “저건 진짜… 드라마로 보는 거랑은 비교가 안 돼!” 그들의 환호성은 작은 탄성처럼 번져나갔다. 덕분에 히나의 재촉에 더욱 가까이 가게된 일행들은 정말로 코앞에서 구경을 할 정도의 거리로 향했다. 가까이에서 구경을 하니 히나의 친구중 한명은 혼절할거 같은 느낌이 든가며 매우 설레어 했다. 그런 히나의 친구들이 혹시라도 위험하진않을까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지운은 문득 어느정도 이길래? 싶어서 연습중인 주인공들을 쓱 하고 보았다. 시선을 돌린 지운의 눈에, 익숙한 실루엣이 스쳤다. 멀리서.조명 아래. 그 사람이 있었다. 서, 태, 평. 순간, 지운의 심장이 아주 작게, 아주 깊게 떨렸다. 10년 만이었다. 그러나 성숙함이 더해진 것 말고는 태평의 얼굴은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조명 아래 선 태평을 지운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이 온몸을 휘감았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지운은 서둘러 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몸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겨우겨우 발걸음을 떼려던 그때. "사랑해요!" 히나의 친구 중 하나가 서툰 한국어로 외쳤다. 태평은 연습하던 중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냈다. "꺄아아!" 주변이 터질 듯한 환호로 가득 찼다. 그런 태평의 눈에, 사람들 사이로 한 사람. 숨을 죽인 채 서 있던 사람. 바로 지운이 태평의 눈에 들어왔다. 태평은 순간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태평 역시 지운 을 알아봤다. 지운은 머리를 깊게 숙이며, 사람들 틈을 가르며 빠르게 움직였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조용히, 그러나 다급하게 사람들을 밀치며 나아가는 지운. "다... 당신...?!" 태평은 무심코 혼잣말을 뱉었다. 그리고,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지운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형!? 곧 리허설 들어가는데!? 어디 가?! 형!!" 매니저가 놀라 부르며 따라붙었지만, 태평은 들리지 않는 듯 앞만 보고 달렸다. 지운은 안다. 지금 잡히면, 모든 게 무너질 거란 걸. 그래서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뜀박질을 하려던 순간이였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도망쳐야 했다. 숨이 가빠지고,귓가엔 거친 자신의 숨소리와 발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잠깐만요!! 서요!! 제발, 잠깐만!!! 서봐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아직도, 변하지 않은 목소리. 지운은 더 고개를 숙였다. 그 울음 섞인 외침에 귓가가 아리듯 찢어졌지만, 발걸음은 멈출 수 없었다. "제발!! 제발, 서요!!" 거의 울부짖음이었다. 지운은 더 빨리 뛰려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숨이,숨이 쉬어지지 않았다.결국 태평에게 팔이 잡혔다. "헉... 헉..." 뒤에서 잡은 손에 지운은 몸을 비틀었지만, 더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눈앞에, 태평이 있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비웃기라도 하듯. "...당신... 맞죠...? 그렇죠...?당신... 여기서... 왜... 아니, 언제부터...!? 여지껏...일본에 있었던거에요!?" 태평은 혼란과 기쁨과 절망이 뒤섞인 눈으로 지운을 쳐다봤다. 말을 잇지 못하는 목소리. 어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지운은 차갑게 입술을 꾹 다물고 서늘한 일본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뭐...? 뭐라는게요?! 일본어 하지마요...한국말로 해요..." "아프니까... 손을... 놓아주시겠습니까?" 한순간. 태평의 얼굴이 무너졌다. 드라마를 위해 어설프지만 일본어를 학습한 그는 지운이 여러번이나 당신을 모른다...아프니 놔달라는 말을 겨우 알아 들었다. "거짓말하지 마요!! 당신 맞잖아!!. 네!? 맞잖아요!!" 태평은 떨리는 손으로지운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나 좀 봐요. 제발... 나 좀 보라고..." 지운은 시선을 돌렸다. 그저, 바닥만 응시했다. 태평은 더 다급해졌다.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날 몰라요..." 눈물 한 방울이 뚝, 지운의 신발 위로 떨어졌다. "아...그..그래요...당신 왼쪽 갈비뼈에 화상자국...그것만 확인할게요.. 그게 없으면 정말 당신이 아닌거니까..." 태평이 억지로 지운의 갈비뼈쪽을 확인해보려고 옷을 걷어올릴려고 하자 지운은 필사적으로 막았다.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지운은 힘겹게 요청했다. 곧 경찰이 다가왔고, 태평과 지운을 떼어놓았다. "무슨 일입니까?" 경찰의 물음에, 지운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냥... 착각하신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사람하고 닮았다나봐요..." "당신...진짜 나 미치는 꼴 보고싶은거에요!? 당신 맞잖아!!!" 태평이 고래고래 악을 쓰자 지운은 조근조근 경찰에게 상황설명을 하며 소란피우고 싶지않으니 그냥 넘어가달라며 간곡히 요청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목격자들이 많았고 절차에 의거... 둘은 조사를 위해 인근 파출소로 인계되엇다. 잠시 후, 태평의 매니저가 헐레벌떡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해입니다!" 소속사 힘이 작용해, 태평은 파출소에서 큰 문제 없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잠깐만요! 제발, 잠깐이면 돼요!!" 태평이 붉어진 눈시울을 한채 지운에게 다가서려하자 이를 제지한 경찰들에게 끌려가면서도 태평은 절규했다.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 날 몰라요...!" "형!! 정신 차려요!! 이러다 진짜 큰일 나요!!" 매니저와 스태프들이 힘겹게 붙잡아 태평을 파출소 밖으로 끌어냈다. "아...잠깐만이면 된다고 쫌!! 놓으라고!!" 태평은 발을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끌려나갔다. 파출소 복도 끝, 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지운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지운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혼자 남겨진 공기 속에 말없이 서 있었다. 10년 동안 꾹 눌러온 무언가가 조용히,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파출소 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공기 속을 깊게 가르고 사라졌다.지운은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수많은 시선이 스쳐갔지만,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끝이 서서히 굳어갔다. 심장은 마치 오래된 고장 난 시계처럼 삐걱이며 천천히, 무겁게 움직였다. 지운은 힘겹게 몸을 돌려 파출소를 나섰다. 터벅, 터벅. 거리는 아직 시끌벅적했지만,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운은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조금 전까지, 태평이 꼭 움켜쥐고 있던 자신의 팔. 그 감촉이 여전히 피부에 남아 있었다. "태평씨..." 지운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10년 이라는 세월이 꼬박 지났음에도 단한번에 재회만으로 무너져 가고있는 자신을 책망햇다. 벌써부터 태평이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버린것이였다. 눈을 감았다. 문득 눈가가 뜨겁게 젖어드는 걸 느꼈다. 울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 무렵, 촬영장 안, 임시 대기실. 태평은 의자에 넋이 빠진 채 앉아 있었다.앞에서 누군가 대사를 건네고, 감독이 큐 사인을 보내고, 스태프들이 분주히 오갔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한 장면만. 도망치듯 돌아서는 지운의 뒷모습.냉정한 얼굴.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그 한 문장이,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형...... 태평이 형!!!” 매니저가 다급하게 부르며 흔들어 깨웠다. "어..?!... 어..미안.....!" 태평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사는 새하얗게 지워졌다. 그저 입술만 파르르 떨리며 헛된 공기를 뱉어낼 뿐이었다. 그날, 태평은 촬영을 끝내지 못했다. “형, 오늘은 쉬어요. 진짜 상태가 안 좋아 보여요...”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태평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가 끝나고, 태평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호텔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닫고,불도 켜지 않은 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주먹을 쥐고. 고개를 떨구고. 다시한번 미치도록 후회했다. 죽는한이 있더라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운이 30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을때 자신이 지운에게 햇던말을 번복하고 싶었다.. 다시한번 정신을 가다듬은 태평은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했다. 덕분에 빨리 촬영을 마치고 일주일의 여유 시간이 주어지자, 태평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움직였다. 어설픈 일본어를 더듬으며 지운의 사진을 들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스미마셍… 이 사람, 본 적 있으세요?" 하지만 태평을 알아보는 사람들덕분에 진전은없고 오히려 사람들한테 둘러쌓이는 피로도만 얻자 태평은 애써 웃으며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초조하게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태평의 행동에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애타게 찾아요?" "...꼭 만나야 하는 사람." 짧은 대답.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간절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매니저는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설마... 그때 그 파출소 사건 그 사람이에요?! 형, 안 돼요!! 진짜 큰일 난다고요!! 이번에도 사고치면...대표님 한테 제가 죽어요!! 그리고 광고일정은 어떻게 하려고요!?" 태평은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빛바랜 눈동자 속, 은은하게 서린 광기 같은 것. "내가 그냥 이 자리에서 위약금 물어주고 연예계 은퇴를 하면 볼만하겠지? ,아니면 여기서 볼 일 보고 늦게라도 복귀해서 잔소리좀 듣는게 너의 안위에도 좋지않겠어?" 매니저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아 이 형... 진짜다.'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대신 진짜... 사고만 치지 말아요. 일본은 사립탐정 시스템 잘 되어 있으니까, 사진 넣고 의뢰해봐요. 금방 찾을 거예요..." 두둑한 사례금. 정성스럽게 준비한 지운의 사진. 그리고 이틀 만에..... "찾았습니다.이 주소로 가시면 됩니다." 태평은 공손히 인사를 한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지운의 거취로 확인된곳으로 향햇다. 그날, 지운은 바빠진 사치코의 료칸 일을 돕기 위해평소처럼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익숙한 마당을 지나려던 순간. 그곳에 태평이 서 있었다. 순간, 지운은 몸이 굳었다. ============================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저작권 : 마늘바게트 님. ============================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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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필 무렵-14 (END)- (펌)
그날은 특별한 날도, 큰 행사가 있던 날도 아니었다. 아침 9시. 태평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 매니저는 식은땀을 흘렸고, 핸드폰 화면엔 수십 개의 기사 알림이 떠 있었다. [서태평♥한세라, 새벽 차량 데이트 포착!] [드라마 속 연인이 현실로? ‘그 겨울의 바다’ 커플, 실제도 썸타는 중?] [한세라 측, “딱히 부인할 건 없다” 애매한 입장… 네티즌 반응은?] 차량 안에서 웃고 있는 두 사람. 식당에서 마주 본 채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 태평이 우산을 씌워주는 순간. 그 누구도 숨기지 않았다. 톱스타 여배우 한세라 측은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았다. "별일 아냐"는 듯,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태평의 소속사는… 조용히 이 상황을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 공식 SNS에 함께 찍은 비하인드 사진 업로드 ▶ 브랜드 광고 컷에 두 사람의 이미지 삽입 ▶ “달달한 분위기의 새 화보 공개”… 실은 스캔들 분위기 끌어오기 매니저는 말했다. "근데...둘이 진짜 사귀는거 아니죠..??" "예?! 아..아니에요!! 그냥 진짜 친한 선후배 사이일뿐이에요..." 매니저는 그런 태평의 눈치를 쓰윽 보더니 미묘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싫진 않잖아요, 태평 씨. 세라 씨도 불편해하지 않고, 반응도 나쁘지 않아요. 지금 이 기세… 탄력 제대로 받으려면 타이밍이에요.” 태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세라가 싫은건 아니였지만...그 느낌이 아니였다...지운을 보며 느꼈던 가슴이 뭉개질정도의 감정요동...그리고..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말이다. 싫다는 감정도, 좋다는 감정도 명확하지 않았다.그저 머릿속엔 한 사람의 얼굴만 떠올랐다. 오랜만에 스케줄이 비는 날, 태평은 망설임 없이 지운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지운은 받지 않았다. 한 번, 두 번…세 번, 네 번…오기로 계속 걸었다. 그럴수록 초조함은 커졌고, 손은 덜덜 떨렸다. 결국 태평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지운의 집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려 손을 뻗었을 때, 손끝이 잠시 망설였지만, 곧 익숙한 숫자를 눌렀다. “삐— 틀린 번호입니다.” “…뭐지?” 다시 누르고, 또 눌렀다. 하지만 계속 ‘오류’ 표시. 그제야 태평은 멍하니 서 있었다. 마음 어딘가, 깊은 곳이 조용히 무너져내렸다. 몇 시간을 기다렸다. 해가 뉘엿할 무렵,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터벅터벅 다가왔다. 지운이었다. “태…태평씨…?” 지운의 목소리는 놀라 있었고, 그 눈엔 당황과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 “잠깐 나랑 이야기해요.” “…미안해요. 지금 정말 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도대체 왜 그래요!?” 태평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지운이 애써 진정시키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비밀번호는 왜 바꿨어요? 왜 연락도 안 되고, 대체 왜 다 끊어내려는 거예요!?” 태평의 질문은 날이 서 있었고, 그 눈엔 진심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미안하다는 듯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제발 대답 좀 해요. 나,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 순간 꺼놓지 않았던 TV에서 태평과 세라의 스캔들 뉴스가 터져 나왔다. “서태평, 톱 여배우 한세라와 열애? 달달한 새벽 데이트 현장 포착!” “씨...발.” 태평은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TV를 꺼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입 다물고 있던 그는 감정을 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지금 저것 때문에 화나서 그런거죠…맞죠? 그래서 그래요??저거...사실 아니에요...그냥 진짜 친한 선후배 사이에요...단지...” “…아니에요.” “…아니에요?그럼 왜 이렇게 밀어내요… 왜 자꾸, 멀어지려고 해요…” 지운은 태평의 진심을 알았지만.. 이참에 태평을 좀더 밀어낼 생각으로 말했다. "아니라면서..왜 공식적으로 극구부인 안해요?" 아니라면서 왜 부인 안 했어요? 기자회견을 열던...개인 SNS올리던..” 지운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태평은 움찔했다. “…그건…” “그렇게 말해도 결국, 어딘가 마음이 있었다는 거 아닐까요?” “아니에요!진짜 아니에요! 제 말 좀 들어봐요…” 태평은 간절했다.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두 손은 꼭 쥐어져 있었다. “소속사에서… 지금 그걸 마케팅으로 써먹고 있는 거예요.제가 원해서 그런 거 아니라고요.지금 이 시점에 거절하면…팀 전체에 피해가 가니까…” “뭐라고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다뇨...…” 지운의 말은, 날카롭게 잘려 나갔다. “…당신이 날 좀 이해해주면 안 돼요?” 지운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변했군요, 태평씨.” 그 말에 태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멍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말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 태평이 떠났다. 그제야 지운은 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소파도, 벽도 아닌 그저 현관 앞,딱딱한 마루바닥 위였다. “...미안해요... 태평씨…” 입을 열자, 조용히 뱉어지는 목소리는스스로도 들릴 만큼 작았다. “...정말... 미안해요…” 지운은 무릎을 끌어안고 조용히 어깨를 떨었다. 울음을 삼키려 애썼지만,목 끝까지 올라온 감정은 이내 작고 얇은 흐느낌으로 새어 나왔다. “...이렇게라도…멀어지지 않으면…언젠간 난 당신한테...크나큰 폭탄이 될거에요.." 그 말은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변명, 그리고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눈물이었다.방 안은 고요했다. TV도 꺼져 있었고,창밖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그 침묵 속에서, 지운의 울음소리만 아주 작게, 오래도록 이어졌다. 서로 연락하지 않은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보고 싶었지만,전화번호를 누를 용기도,먼저 문자를 보낼 용기도 내지 못한 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태평이 아무런 연락 없이 지운의 집 앞에 나타났다. "문 안 열어주면 저… 고성방가 해서 경찰에 잡혀갈 거예요. 진짜로요." 어이없고, 웃기고, 짜증스러운데…지운은 결국,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태평은 지운의 손을 잡고 끌었다. "뭐… 뭐하는 거예요!?" "우리,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지낸 지 꽤 됐잖아요.오늘은… 당신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싶어서요. 식당 예약해놨어요." 그 말에 지운은 이상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태평의 표정을 보고 말이다. 도착한 곳은 누가 봐도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오늘은 제가 사는 거니까, 아무 걱정 마세요.” “…태평씨, 이런 데는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이리저리 불려 다니다 보니까요.문득 생각났어요. 당신이랑은 이런 데 한 번도 안 와봤다는 거.” 식사가 막 시작되려던 그때였다.태평을 알아본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와, 진짜 서태평이에요?! 진짜야?!” “싸인 한 장만요!”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안 돼요?” 처음엔 태평도 애써 웃으며 응대했다. 하지만 몰려드는 사람들에테이블 주변은 점점 시끄러워졌고,음식은 식어갔다. “…지금 밥 먹는 중이에요. 정말 감사하지만, 좀 자제해 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인 요청과 카메라 셔터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태평은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조금 후, 지운에게 전화가 왔다.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난 태평이 근처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운이 조심스레 다가가자 태평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진짜 짜증 나네요. 개도 밥 먹을 땐 안 건드린다잖아요. 당신이랑 겨우, 좋은 시간 보내는 줄 알았는데…” 그 말에 지운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도… 그 사람들, 다 태평씨 좋아해서 온 건데요.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 있었을까요…” “…그럼 당신은? 그렇게 좋은 시간 방해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태평씨, 지금… 예민해요. 좀 피곤한 것 같은데, 쉬는 게 좋겠어요.” “...하.” 태평은 씁쓸하게 웃으며뒤돌아섰다. “됐어요. 내가 괜히 오버한 거 같네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운은 조용히 생각했다. '미안해요...미안해요..어쩌면...영준이...혜정이...그다음은...제가...당신 곁을 떠날날이 점점 오고있군요..' 그날을 끝으로 둘의 사이는 점점 조금씩 멀어지는듯했다. 지운은 가슴한켠에 지워지지않는 태평때문에 괴로웠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끝나지않았다. 점점 삶의 빛이 희미해져갈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세상은 하루아침에 뒤집혔다. SNS와 뉴스 헤드라인엔 같은 이름이 반복되고 있었다. [독점] 유명 감독 송○○, ‘작품 거래 통한 탈세’ 의혹 제기 [속보] 수십억 그림 대금, 허위계약 및 부정 세금 감면 정황 [파장] “문화백 작가의 작품, 명의 대여 아니냐”... 논란 가중 화면 속 기사엔 지운의 이름이 함께 언급돼 있었다. "그림의 소유주였던 미술가 '문화백', 얼마전 탈세 혐의를 돕기위해 금전을 받고...해당 작품을 양도했다는 정황... 거래 경위 불명확, 관련자 소환 예정." 지운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곧 휴대폰 진동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경찰청 출석 요청 / 협조 공문] 그날 이후, 지운은 연이은 경찰 조사와 언론 취재에 시달렸다. 카메라 플래시, 마이크, 조롱 섞인 댓글들…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림, 제가 드린 게 맞습니다. 대가? 없었습니다.그냥, 예전 인연으로…탈세를 도왔다는건 사실이아닙니다.” 그 말에 경찰은 의아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선의.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금전거래 흔적은 없었다. 일주일 뒤....무혐의 처리. 공식 보도는 간단히 났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문화백’이라는 이름엔 이미 ‘의심’이라는 얼룩이 남아버렸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 안난다고...말이다. 그의 명성이 얼룩지자 갤러리 전시는 하나둘 취소됐고, 유명 컬렉터들 사이에서 "위험한 탈세작가"라는 오명 돌기 시작했다. 지운은 조용히 모든 걸 받아들였다. 그림을 건네던 순간부터 각오하던 일들이 하나씩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냥...내가 안고 갈게요...' 그렇게 다짐하던 순간이였다.지운의 집 문을 거칠게 누군가 두들겼다. 확인해보니 태평이였다. "안열면...부셔버릴거에요..나 지금 눈깔 돌아서 못할것 도 없어요..." 정말로 저지를것만 같았던 태평이였기에 문을 열어주자 태평은 다급히 지운을 다그쳤다.. “어떻게 된 거예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요?! 괜찮아요?! 경찰서 끌려갔었다면서요?! 어디 상하진 않았어요!?” 지운은 침착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눈빛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있었다. “…그냥요… 돈이 좀… 필요했어요.” “뭐라고요…?” 태평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돈…이라고요?” 지운은 눈을 피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는 그대로예요. 경찰 앞에선 말 안 했지만… 진짜 이유는, 돈 때문이었어요.” 순간, 태평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분노와 배신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그림… 그게 당신한텐 전부라고 하지 않았어요?” “…” “살게 해준 이유라고… 세상이 끊어져도 놓을 수 없는 희망이라고 했잖아요…?” 지운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눈만 꾹 감고 있었다. “근데… 그걸… 돈 때문에 넘겼다고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당신, 나한테 거짓말한 거죠…?” “…태평씨…”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태평의 눈에 분노가 치올랐다. “더러운 위선자네요. 당신이 말하던 ‘진심’, ‘예술’, ‘의미’… 전부 다 그냥 포장된 말장난이었죠?” “…” “그림 한 점이 그렇게 대단하다며… 죽어가던 사람인 자신 하나 살렸다고 자부하던 당신이이제 와서 겨우 그 입으로 돈 때문이라고 말해요?” 지운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태평의 심장을 진짜로 찢게 될까봐. 그래서 그저 조용히, 자신의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래요. 저는… 위선자예요. 근데 어쩌겠어요...명예...명성 전부... 돈이 필요한법인걸..." 그 말에 태평의 눈빛이 얼어붙었다. “…알겠어요. 당신도… 결국, 그냥 그런 사람이었네요.” 그 말과 함께, 태평은 그대로 돌아서려했지만 다시한번 지운을 보며 물었다. “당신이 나한테 했던 말들…다 진심이긴 했던 건가요? 무서워요, 이제는 그마저도… 믿을 수 없게 돼버려서 혹시, 난…그냥 당신에게 그 인간...내 생부의 빈자리를 메우는 대체품이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지운이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태평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는 참았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문을 거세게 밀고 나갔다. 쾅! 닫힌 문이 남긴 진동이 방 안을 울렸다. 그제야, 지운은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아무런 소리 없이. 마치, 스스로 무너지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미안해요...이렇게라도, 당신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 작은 속삭임은 어느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텅 빈 공간 안에만 남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집요한 기자들은 지운을 연신 괴롭혔다. 서울 도심의 한 출입구.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지만 지운을 향한 기자들의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문지운 화백님, 질문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지운은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빨리했지만 그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송감독과의 그림 거래,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혹시..그 그림, 서태평 씨와의 관계와 관련 있는 건가요?” 그 이름이 들리는 순간 지운의 발걸음이 잠시 멈칫했다. ‘태평씨…’ 하지만 곧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기자는 따라붙었다. 그런 기자에게 지운은 말했다. "무슨말씀 하시는건지 모르겠네요...그분과는 접점이 없는데..요?" “한때 후원자셨죠? 그런데 최근 인터뷰에서, ‘아무 관계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부정하시네요?" 지운은 멈춰 섰다.그리고 돌아봤다. 표정은 무표정했고, 눈빛은 싸늘했다. “…서태평 씨는 단지, 당시 가능성 있어 보이는 배우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투자를 한것뿐입니다..” “정말 그것뿐인가요?” 그 순간 다른 기자가 태블릿을 들이밀었다. “이 사진, 기억하시죠?” 화면에는 데뷔 전 태평과 지운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 연달아 펼쳐졌다. 연극 연습실, 작은 밥집, 버스정류장 분명한 ‘관계’의 증거들. “이 정도면 단순한 후원 이상의 사적 관계 아닌가요?” 지운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투자였습니다. 그저 사정이 딱한...유망한 배우에게, 후원하는 의미로. 밥한끼 사주고 만나서 연습을 도와준겁뿐입니다...” “그럼 이 모든 게,단순히 정말 선의 의한 투자라는 건가요??” 지운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기자들은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그림의 탈세 의혹과 서태평 씨의 조연출연 시기가 겹칩니다. 모종의 거래가 있던것 같은데...정말 탈세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서태평 씨는 조사 받았습니까?” “혹시 뭔가 관련이 있는건 아닌지... 직접인 관계자는 서태평 씨 아닙니까?” 그 순간 지운은 기자들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서태평 씨는, 이 일과 아무 관련 없습니다.” “확실합니까?” “100번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괜히 애먼사람 잡지마세요.” 그 말이 끝나자, 지운은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편...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휴대폰 알림. 검색어 순위 상단에는 또다시 ‘문화백’, ‘서태평 과거 관계 의혹’, ‘후원’, ‘탈세 연결설’ 매니저의 표정이 굳어졌다.곧 소속사 이사가 직접 사무실로 내려왔다. 회의실 문은 닫혔고, 분위기는 싸늘했다. “태평 씨.” 조용히 말을 꺼낸 이사의 목소리는 강압적이지 않았지만 단호했다. “요즘 상황, 알죠?” “…예. 기사, 봤습니다.” “그쪽.., 문화백한테 .과거에 도움받았던 건 우리도 알고 있어요. 근데 지금은 좀 다릅니다.” 이사는 태블릿을 밀었다. 화면에는 헤드라인이 줄줄이 떠 있었다. ▶ “후원자와의 관계? 대답 피해가는 서태평” ▶ “작가 무혐의지만… 의심 여론은 계속” ▶ “광고계 긴장, 서태평 ‘리스크’ 확산 중” “지금은 당신이 브랜드예요. 당신이 나서기만 해도 제품이 팔리고, 당신 말 한마디에 수억이 움직입니다.” “…네.” “근데, 그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감정 흔들리는 모습 보이면 바로 계약 취소 들어옵니다. 이미 몇 군데는 움직이고 있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이사는 숨을 내쉬고 말했다. “선택 잘하라는 겁니다.” “…선택?” “네. 그 사람하고 어떤 식으로든 엮이는 순간 당신, 끝장이에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주변이 문제란 뜻이겠죠.” “듣기 좋게 포장해도 좋아요. 결론은 하나예요.” “…지금처럼 올라갈지, 같이 떨어질지.” 그 말은 사형선고처럼 차가웠다. 회의실을 나선 태평은 말없이 복도를 걸었다. 뭐가 옳은 건지이젠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정말… 이제, 내가 그 사람 옆에 서면 안 되는 걸까.’ 태평은 쉬지 않고 울리는 휴대폰을 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루 스케쥴을 끝내고 집에 도착한 태평은 어두운 거실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밖은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 휴대폰 화면 속엔 여전히 지운을 둘러싼 뉴스들이 흐르고 있었다. 태평은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그 순간 마지막으로 지운과 마주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혹시…나는…그빌어먹을 인간인 내 생부의 대체였던 거예요…?” 지운의 눈이 흔들렸다.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짧았지만, 잊혀지지 않았다. 그때 느꼈던 싸한 이물감. 피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던 그 순간의 고요. ‘왜…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왜 한 마디로라도…"아니야"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태평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질문이 쏟아졌다. 어쩌면, 그건 정말 맞았던 걸까? 내가 보기엔 웃어줬지만, 속으론 늘 비교했던 걸까? 영준과 자신을...그 모든 관심과 다정함이 사실은 그 인간으로부터 느끼고 싶었던걸 나한테 대신 느낀걸까...... 태평은 혼잣말로 속삭였다. “…어째서… 그렇게 침묵했어요…” 손이 떨렸다. 가슴이 미세하게 조여왔다.태평은 이내 몸을 일으켜 노트북 쪽으로 향했다. 작품 스케줄, 인터뷰 일정, 예능 출연…모두 다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이젠…정말 끝이에요, 당신.” 그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태평의 마음속에서 문지운이라는 사람을 덜어내는 의식처럼 내려앉았다. 그렇게 꼬박 시간이 흘렀음에도 시들시들 해졌지만 일부악의적인 기자들은 여전히 지운을 따라다녔다. 지운을 향한 세상의 손가락질은 시간이 흘러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기사 속 키워드는 점점 시들해졌지만, 악의적인 몇몇 기자들은 여전히 그를 쫓았다. ‘이대로는 나도, 태평씨도 끝이야…’ 지운은 결심했다.떠나야겠다고.멀리, 아주 멀리 한국을 떠나기로. 짐을 정리하고,집을 내놓고, 모든 연락을 하나씩 정리해가며 마지막 인사들을 준비했다. 영준과도 잠시 만났다. 삐걱였던 사이지만, 그래도 태평의 생부니까. “이젠… 니가 좀 더 잘해줘....” 지운의 말에 영준은 술잔을 들고 허허 웃으며 손사래쳤다. “아이, 난 아직 죽기 싫어. 그런 부담 주지 마.” "그래도.." "...너 왜그러냐..? 갑자기...왜? 멘탈 흔들려서 자 살이라도 하려고?" "...끝까지 농담이냐...? 간다.." 그렇게 영준과 헤어진 지운은 한군데 더들렀다. 바로 혜정의 납골당.... “태평이… 이젠 정말 잘하고 있어. 하늘에서 봤겠지...?” 눈물 한 방울. 말없이 흘렀다. 한참 출국준비를 하던중 어느새 다가온 태평의 생일. 아차 싶었던 지운은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로 전화한 거죠?” “미안해요…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 “…지금 생일파티 중이라 바빠요. 다음에요.” “…1시간도 아니에요...30분만… 부탁할게요.” 지운의 간절한 목소리에 태평은 결국,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골목으로 그를 불렀다. “잘 지냈어요?” 지운의 물음에 태평은 아무 말 없이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당신한테 받은 거…그동안 조금씩 채웠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매달 꼬박꼬박 넣으면 5개월 안엔 다 갚을 수 있어요. 물론 이자까지 쳐서요... 그정도는 이제 벌수 있어요...”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손에 쥐어진 통장을 내려다봤다. “당신, 돈 좋아하잖아요. 안기뻐요?” "..." “이제…사적으로 만나지 말죠.” “…” “…태평씨…”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뒤로 이어진 태평의 말은지운의 심장을 조용히 찢었다. “전!!... 당신이 너무나도 좋아요...아직도 당신만보면 가슴이 뛰고 애뜻해요...하지만...가끔 아직도...당신만 보면 한숨이 나와요. 초라하고, 작아지고, 쓸모없는 기억들이 따라와요.” "..." “그 망할 생부 아파서 늘 콜록거렸던 엄마...빚쟁이한테 맞고...쫒기고 죽을뻔하고..., 그 빌어먹을 시간들… 다 당신한테 묶여 있는 기분이에요. 당신이 마치 이젠 내게 걸어다니는 악몽같아요...” “…태평씨…” “당신이 말했었죠? 언제든지 당신이라는 사람의 문 열어두겠다고.” 태평은 고개를 들었다. 눈빛엔 단호함만 남아 있었다. “나 이제…그 문으로 나가려 해요. 나 이제…당신이라는 사람한테서 독립할래요. 제발,이젠 좀 나… 내버려둬요.” 그 말에 지운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울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누가 볼까 두려워 애써 참았다. 대신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마지막엔, 그저 잘 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내지 않았다. 소리 없이, 조용히 세상에서 가장 슬픈 뒷모습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태평은 끝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저 한숨만 천천히. ‘…왜 이렇게…속이 허전하지…’ 그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말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김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 태평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의 시선을 촬영 내내 느끼고 있었다. 촬영이 끝나자,김감독은 조용히 태평을 불렀다. “태평 씨 잠깐, 얘기 좀 하자고.” 모니터 뒤 빈 회의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김감독은 잠시 뜸을 들이다 조용히 말을 꺼냈다. "문화백, 요즘 어떻게 지내나?” “…잘 모르겠습니다.” 짧은 대답. 선 긋는 말투. 김감독은 피식 웃더니, 그 웃음을 곧바로 삼키며 진지한 눈빛을 가졌다. “그래. 근데 당신한테 그 사람 얘기 하나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태평은 잠시 눈을 피했다. 하지만 김감독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 그림 말이야. 송감독한테 넘어간거 말이야 .” “………” “그 그림, 원래는 전시 앞두고 있던 작품이었어... 그림 한 점 값이 얼만지 알지? 수억짜리야.” “근데 그걸…그 사람이 왜 넘겼을 것 같나? 송감독한테 잘 보이려고?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지금 그 자리에 없지. 당신 때문이었어.” “…네?” “당신 자리…생각나지 그 옛날 오감독 그 영화 조연 자리 말이야.” “한창 잘 나가던 아이돌이, 태평 씨 역할 맡기로 거의 확정돼 있었어. 근데 송감독이 오감독한테 청탁을 넣어서 뒤집었지.” “그거,문화백이 뒤에서 설득해서 그런 거야.” “문화백...은 잘알고 있었지...욕심많은 송감독의 마음을 뒤집으러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걸.... 그래서...청탁? 그래, 그럴 수도 있어. 근데 그 청탁, 당신을 위해서 자기 인생 던진 거였다고. 결론적으로 보면 예전에도 송감독이 이런일 있을때 문화백이 얼굴에 술까지 뿌리면서 거절한 이유가 이럴까봐였어." 김감독은 한숨을 쉬며 지운이 태평을 위해 송감독한테 어떤 굴욕까지 당했는지 전부 말해주었다. 태평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에 자리에서 몸을 떼지 못했다. 김감독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문화백... 그날 술 퍼마시고 내 앞에서 울더라. 문지운이란 사람, 술 마시고 남 앞에서 흐느껴 본 적 거의 없거든.” “내가 가진 전부를 줘서라도,그 사람을 다시원래자리로 다시 올려놓고 싶다.그랬어. 정말 말그대로군...명성돈...돈도...예술인의 혼도..전부..” “근데..내가 오늘 보아하니...태평씨...그런 사람한테 지금까지 뭐라고 했는지 생각은 해봤나?”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태평은 손에 쥐고 있던 종이컵을 떨어뜨렸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귀에서 웅, 하는 소리만 울렸다. 촬영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는 숨 가쁘게 휴대폰을 꺼내 지운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울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울렸다. “제발 받아요…제발…” 그는 그 길로 지운의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현관에는 이미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이번엔, 연결됐다. “지금… 어디에요!? 당장 나랑 만나요! 지금… 만나서 이야기해요!” 수화기 너머,조용히 울리는 목소리. “…벚꽃… 필 무렵이었죠.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만나요.지금, 제발…” "그때 처럼...늘 건강하고 씩씩하게 지내야 해요..." "당신?! 지금 무슨 소리하는거에요?! 어디에요?! 설마...어디로 떠나기라도 하는거에요?! 잠깐만요...이러지마요...잠깐만..." 지운은 말없이전화를 꺼버렸다. 태평의 절박한 목소리를 듣자하니...이미 알아버린것 같았기에 말이다. 자기 자신을 너무 잘알았던 지운은 미련이 생기기전에 서둘러 이동했다. 그리고,그 길로 출국을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운은 떠났다. 그 뒤로, 그는 다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지운과의 연결이 완전이 끊긴 태평은 넋을 잃은 얼빠진 표정으로 촬영현장에 돌아왔다. 김감독은 태평의 상태가 촬영을 할 수 없는 상태인걸 파악하자 잠정적 촬영 이탈을 아무 말 없이 허락해줬다. “마음대로 다녀와요. 그게 필요한 시간이니까.” 허무한 마음으로 돌아온 집 앞. 문 앞엔 택배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보낸 사람: 문지운 그 이름을 보는 순간, 태평의 손끝이 떨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엔 조심스레 포장된 한 점의 그림이 있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봄날.작은 공원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는 자신. 그 모습을 무심히 감상하던 한 남자의 뒷모습. 지운이었다. “행복한 순간이 떠오르면, 그림 그릴 거예요.” 예전에 지운이 했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대로 그림을 품에 안고 펑펑 울던 태평은 뭐에 홀린듯 ...지운과 처음 만났던 그 공원으로 향했다. 그때처럼 벚꽃은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다. 잔잔한 바람. 하얗게 흩어지는 꽃잎들.그리고 너무 늦은 후회. 그 자리에서 태평은 그대로 무너져 주저앉았다. 두 주먹으로 땅을 내려쳤다 피가 날 때까지. “왜...당신은...도데채...왜..…보고싶어요...제발...내가… 왜…내가 무슨짓을...”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펑펑, 꺼이꺼이.마치 어린아이가 울 듯멈추지 않고, 무너진 채로.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말이다. 공원을 지나던 사람들은 태평을 알아봤다. “서태평 아니야?” “촬영 중인가?” “와, 진짜 우네?” 사람들이 모여들고 핸드폰 카메라가 번쩍였지만 태평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 자리엔 이제 남은 사람도, 대사도 없었다. 그저 태평의 울부짖음..그리고... 오직 기억만이. 그리고벚꽃이,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다. -END- ============================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저작권 : 마늘바게트 님. ============================
2026-04-25
소설방
벚꽃 필 무렵-13- (펌)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김감독은 결국 지운의 간절한 부탁을 받아들여,조심스럽게 송감독과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장소는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일식집의 룸. 김감독과 송감독은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순간, 문이 조용히 열리고 지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송감독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그는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얼굴을 찌푸린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게 뭐야, 김감독. 내가 이런 자리 원한다고 했어?" 불쾌감이 가득 담긴 말투.분명한 거절의 태도였다.지운은 잠시 주춤하다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셨어요… 송감독님." 송감독은 그 인사조차 외면한 채, 거칠게 겉옷을 집어 들었다. 김감독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지운을 나무랐다. “...판 깔아줬더니… 뭐해?!" 그제야 지운은 다시 몸을 바로 세웠다. 입술을 꾹 다문 채, 천천히 송감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속에서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존심이 짓밟히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하지만 그는 눈을 감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 바쁘신분의 귀한.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 정식으로 사과드리고 싶었습니다.감독님과 풀고 싶어서… 김감독님께 부탁드린 거예요.” 송감독은 코웃음을 쳤다. “지랄한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서려 했다. 지운은 그 다리 앞에 엎드리다시피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앉으셔서, 이야기라도 들어주세요…” 그 절박한 행동에 송감독은 잠시 멈칫했다. 자신의 앞에서 고고한 척 자존심을 떨던 '문지운' 이 자신 앞에서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이야. ‘요것 봐라…’ 재미가 붙은 듯한 눈빛으로 송감독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지운도 천천히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있었던 일은—” “어~ 너 마침 잘 말 꺼냈다. 그때 일, 그때 방식으로 한번 풀어보자고.” "어허?! 이 사람이...그렇게 까지...?" "형님은 입다물고 계쇼...그때 형님도 그자리에 있었으면서..뭘?!" 김감독의 만류에도 송감독은 기어이 하려던 일을 마저 진행했다. 송감독은 갑자기 술병을 들더니, 그 자리에서 지운의 얼굴 위로 술을 퍼부었다. 쏴아..... 차가운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흘렀고,지운의 어깨까지 흠뻑 젖었다. 과거, 지운은 송감독이 자신과 자신의 그림을 모독했다며 송감독 얼굴에 술을 뿌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그때의 장면이 그대로 되갚아진 셈이었다. 온몸이 떨렸다. 구토가 올라올 만큼 수치스러웠고,자존심은 바닥에 질질 끌렸다. 하지만 지운은 웃었다.일그러진 얼굴을 억지로 펴며,가식적인 미소로 입을 열었다. “...먼저 한잔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엔, 제가 한 잔 올리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송감독은 그 말을 듣고는 더 흥이 난 듯팔짱을 끼고 지운을 내려다보았다. “하하… 요것 봐라.진짜 제대로 굽는구만?” 송감독은 비뚤어진 웃음을 지으며,자신의 잔을 지운 쪽으로 내밀었다. “자, 따라봐. 네 진심이 얼마나 되는지 좀 보자고.” 지운은 조용히 잔을 받아들었다. 손에 들린 병이 사소하게 흔들렸다. 그 진동은 분노 때문인지, 굴욕 때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조심스레 술을 따르려는 순간—툭. 송감독은 잔을 밀어내듯 받아버렸다.술이 테이블에 조금 튀었다. “진심이 없네…?” 그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가볍고 조롱조차 담백했다. “ 진짜 풀고 싶은 거 맞어?” 지운은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멈춰섰다. 속에서 무언가 끓고 있었다.이 자리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는 다시 술잔을 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굴욕을 감수하겠다 결심한 사람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정중히 따르겠습니다.” 지운은 더욱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자세를 낮췄다. 잔을 들고,다시 한 번 병을 들었다. 이번에도 송감독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자존심상햇어? 짜증나서 손, 떨리는걸로 보이는데?. 그런 마음으론 못 풀어.” 또 한 번 술을 쏟아냈다. 김감독은 지나친 송감독의 추태에 옆에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지운은 아무 말 없이, 오히려 더 고개를 숙이며 다시 병을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천천히,떨림 없이,한 방울의 실수도 없이 술이 가득 채워졌다. “...감사합니다.” 지운은 잔을 송감독 앞에 조심스레 밀어냈다. 그 손끝은 더이상 떨리지 않았다.송감독은 잠시 그 잔을 내려다보다,작게 웃었다. “됐네. 이제, 좀 볼 만하구만.” 송감독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그 말이술잔이 볼만하다는 뜻인지,아니면 이대로 완전히 짓밟혀 무릎 꿇은 지운의 모습이 볼만하다는 것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지운은 깊게 숨을 삼켰다. 이제야 본론을 꺼낼 타이밍이라 생각한 순간, 송감독은 다시금 지독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사과도 했고 술도 따랐고…이제 노래 한 곡 뽑자, 어때?” “...네?” “한 곡 뽑으라니까. 아니면 하기 싫어?” 지운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순간 ‘여기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는 곧 고개를 숙였다. 김감독이 지나친 송감독의 그 모습을 못마땅한 듯 말하려 하자 송감독이 먼저 딱 잘랐다. “형님은 가만히 계셔? 이거, 정리 중이잖아?” 김감독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지운을 향해 안쓰러운 눈길만 보냈다. 그렇게 지운은 조용히 일어섰다.그리고는 어색한 율동과 함께 익숙한 대중가요의 한 소절을 읊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손끝은 이미 땀에 젖어 있었다.어깨는 들썩였고,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속은 이미 쏟아낼 것처럼 구역질이 났다. 그렇게 한 곡을 다 끝냈을 때쯤, 송감독은 박수를 치며 배를 잡고 웃었다. “야, 이 새끼야.이제 좀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 좋네~ 진짜.” 지운은 헛웃음으로만 반응했다. “형님이라고 해봐. 한 번.” “…형님…” “그래, 이 새끼야. 그래서 우리 아우님이 뭔 걱정거리가 있어서이렇게까지 죽는 시늉을 다 해?” 지운은 그제야 겨우마실 물처럼 숨을 들이쉰 뒤 조심스럽게 사정을 꺼냈다. 태평의 이야기. 그의 노력, 무너진 기회, 그리고 지금 그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여기까지 온 이유. 지운이 진심을 다해 말하자 송감독은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턱을 괴고 껄껄 웃었다. “아~ 오감독한테 그 얘기 좀 해달란 거네? 청탁 좀 넣어달라?” “...네.” “허허~ 전화 한 통이면 금방 해결이지, 그럼~ 아이, 진작에 이렇게 귀엽게 나왔으면 됐잖아...근데 맨입으로..?" 탐욕이 가득한 시선으로 지운에게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자 지운은 숨이 턱 막혀왔다. 예전에도 느낀 그 더러운 느낌 말이다. 지운은 잠시 숨을 골랐다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 자리를 나섰다. 차까지 걸어가는 짧은 거리 동안, 지운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트렁크를 열고, 조심스럽게 천을 들춰낸다. 그 안엔 송감독이 오래 전부터 탐내던, 지운의 대표작 중 하나가 조용히 누워 있었다. 손끝이 그림에 닿는 순간, 지운은 멈춰섰다. 이 작품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의 예술관, 인생관, 젊음의 고집 모든 걸 상징하는 존재였다. ‘이걸 건넨다는 건…내 삶의 정체성을 담보로 청탁을 넣는 셈이다.’ 숨이 막혔다. 그때, 문득 태평의 얼굴이 스쳤다. 무대 뒤에서 대사 외우던 그 모습, 땀에 젖은 눈가, 그리고 지운을 향해 웃던 미소. 지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그리고 천을 다시 덮었다.천천히 그림을 꺼내 들고, 그대로 식당 안으로 향했다. “저… 소소하지만…제 정성이라 생각하시고 받아주세요.” 송감독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무엇이길레 이렇게 천에 소중히 감춰둔것일까 기대하며 천을 거두자 송감독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예상밖이였다. 그냥 소소하게 돈놀이나 할 수 있을 정도를 원했지만...말이다. “…이렇게까지. 그 치기 어린 친구가 뭐라고… 너, 진짜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지운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냥… 제 가족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너그러이 부탁드립니다.” 송감독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림을 바라보다 이내 그것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이 새끼 진짜 웃긴 놈이네. 그래, 알았어. 며칠 뒤에 촬영장 갈 준비나 하라고 전해.” 그렇게 술자리는 마무리되었고, 지운은 감독들과 인사를 나눈 후 대리를 불러 귀가했다. 대문 앞. 흔들리는 발걸음. 대리 기사에게 요금을 건넨 지운이 고개를 들자 그곳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있는 태평이 있었다. “…걱정했잖아요. 전화는 왜 안 받았어요? 술은 또… 어디서 그렇게 마신 거고요?” 지운은 그를 보는 순간, 미소가 터졌다. 눈물도, 한숨도, 고통도 지금은 다 밀려나고 그저 태평이 있어서…웃음이 나왔다. “...미안해요~ 오늘… 일이 있어서… 딱~ 한 잔 한다는 게… 흐음…” 비틀비틀한 지운을 태평이 조용히 부축했다. “…오늘은 제가 아니라, 당신이 취했네요.사실…저도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요…” 태평의 말에, 지운은 입을 다물었다. 듣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의 마음에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날이었다. 지운은, 천천히 태평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오늘만… 그냥 넘어가요. 그리고… 오늘만은… 그냥 내 옆에 있어주면 안 될까요?” 말끝이 떨렸다. 늘 단단하고,어디에도 기댈 줄 모르던 지운이처음으로, 어리광을 부리듯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있었다.태평은 순간 멍해졌다.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런 지운을 처음 봤다. 얼이 살짝 빠졌던 태평은 곧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요. 오늘은 아무 말도 안 할게요.” 지운을 부드럽게 부축한 태평은 그를 침대 위로 천천히 눕혔다. 지운은 침대 위에서도, 그의 품을 놓지 않았다. 꼭 안은 채, 작은 목소리로 흐느끼며 말했다. “…불쌍한… 태평씨…걱정 말아요.다 잘 될 거예요. 잘 될 일만… 남았으니까…” 태평은 조용히 그의 등을 두드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오늘따라, 너무…” 하지만 곧,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말 안 해도 돼요. 그냥… 실컷 우세요. 묻지 않을게요.” 그 말에, 지운은 얼굴을 묻은 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건 아픔의 눈물만은 아니었다. ‘걱정 마요…내가 다 해결했어요…내 모든 걸 줘서라도’ 그 말은, 가슴 속 깊이 삼켜진 채 조용히 태평의 체온 속에 묻혀 갔다. 다음날 아침.지운은 깨질 듯한 머리를 감싸 안고 천천히 일어났다. 속이 울렁였고, 입 안은 텁텁했다. ‘어제… 태평 씨가 있었던 것 같은데…?’ 희미한 기억이 몽글몽글 떠오를 즈음 방 문이 열렸다. “깼어요? 마침 깨우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태평이었다. 손에 들린 국그릇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예요…? 맛있는 냄새가…” 지운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태평은 조심스럽게 식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북어해장국이요... 완전 만취해서 돌아오셨더라구요. 일단 드세요.” 지운은 한 숟갈 떠먹었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맛있다. 태평 씨, 요리 이렇게 잘했어요?” 태평은 그 말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자주갔었던..가게에서 사온거에요..근데..거기 대박맛있어요..기운 날 거예요. 속은 좀 어때요?” “음… 살았어요, 조금.” 둘은 잠시 조용히 웃으며 따뜻한 식사 시간을 나눴다. 그 순간,지운의 머릿속에 어젯밤의 기억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울컥했던 감정, 꾹꾹 삼켰던 말, 그리고 태평의 품. 슬며시 태평을 바라본 지운이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어제는 미안했어요.아무 말도 안 하고… 그래서, 어제 말하려던 ‘그 얘기’가 뭐였죠?” 태평은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의 표정엔 망설임이 가득했다. “…음… 그게 말이죠…” 말끝을 흐리던 태평은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연기… 그만두려고요.” 지운의 손이 멈췄다. “뭐라고요…?” 태평은 고개를 떨군 채 이어갔다. “남들처럼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고, 직장 다니고,버는 족족… 당신한테 갚고요.” “…무슨 소리예요. 갑자기 왜?!” “저… 너무 민폐 같아요. 이제는 좀… 제 몫은 제가 해내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말은 사과이기도, 스스로를 포기하는 고백이기도 했다. 그 순간,지운은 충격과 안타까움 사이에서 숨을 고르며 태평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지운은 그렇게 말하곤 입도 닦지 않은 해장국 앞에서 조용히 상을 밀어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이불을 끌어올려,머리까지 덮었다. 그 모습에 태평은 조심스레 말했다. “…이대로는… 내가 못 살 것 같아서 그래요. 당신한테도… 부끄러운 인간으로 남기 싫고…” 그때였다. 슥 이불이 젖혀지며, 지운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 서려 있었다. “겨우 이 정도였어!?” 지운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뭐가 부끄러운데?! 도대체 뭐가!?” 태평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려 했지만, 지운은 그보다 빠르게 말을 뱉었다. “입 다물고!! 듣기 싫어…” 그 말 한마디에, 태평은 그대로 굳었다. 둘 사이에 서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순간 태평의 핸드폰이 울렸다.진동음이 마치 방 안을 뚫는 듯 크게 느껴졌다. 처음엔 무시하려 했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 결국 태평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네에?! …정말요…? 아…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전화기를 천천히 내린 태평은,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복귀…하라네요.” “…” “그 아이돌… 너무 발연기라서… 짤렸대요…” 지운은 잠자코 태평을 바라봤다. 태평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온몸의 힘이 빠진 듯, 툭 하고 주저앉았지만, 입꼬리만은, 자꾸만 자꾸만, 올라가고 있었다. “…거짓말 같아…” 그의 두 눈엔 눈물기가 맺혀 있었고, 얼굴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지운은 조용히 태평을 바라보다그제야 이불을 천천히 접고 일어나,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며칠 뒤,태평은 복귀 준비에 한창이었다. 다시금 손에 든 대본,그 속에 적힌 낯익은 대사들. 머릿속에 수십 번, 수백 번을 되뇌던 문장들이 이제는 다시 ‘현실’이 되려 하고 있었다. 거울 앞에 선 태평은 깊은 숨을 들이쉬며 자신을 응시했다. “다시 시작이야. 이번엔… 절대 흔들리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단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몇번이고 대사를 외울 준비를 하고, 연기스타일을 다듬고, 하루에 몇 시간씩 발성과 표정 연습을 반복했다. 마치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처럼 아니, 그때보다도 더 간절하게. 그 모든 준비를 조용히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겠어?' 같은 말도, '힘들면 말해'라는 말도 없었다. 대신, 물을 챙겨놓았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며 서포트해주었다. 태평이 식사에 집중하지 못할 땐 간편히라도 먹을수 있게 미리 준비해두었다. 그리고 밤이 깊으면, 잠든 태평은 방에서 조용히 대본을 들여다보며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이 장면… 이 눈빛이면 되겠지. 이 타이밍엔, 살짝 멈추는 게 좋을 거야…” 누가 시킨 것도,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너졌던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걸 무너진 채로 밀어 올리고 있는 한 사람. 지운의 책상 한켠, 비워진 캔버스 옆에는 아직도 천에 싸인 그림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 그림을 가끔 바라보며 말 없이 웃곤 했다. ‘잘 되고 있어요. 그러니… 내 그림은,그걸로 충분히 잘 쓰이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필요하다면..기꺼이 이것도...난 쓰겠어요..’ 촬영 복귀가 결정되고 나서 태평의 하루는 이전보다 훨씬 더 바빠졌다. 새벽에 일어나 발성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거울 앞에서 대사 톤을 점검했다. 책상 위엔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눈동자 흔들림 금지' '멈춤의 타이밍' '3초 이상 정지 시 숨 고르기' 작은 메모 하나하나엔 태평의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지운은 말없이 그에게 물병을 건넸다. “목 안 상하게 조심하고.” “고마워요. 진짜 당신이.. 없었으면… 나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그 말에 지운은 그냥 웃었다. “…아니에요. 태평씨가 다 노력해서 된 거에요...당연한 결과....” 그 말엔 거짓이 없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화실 한켠, 지운의 켄버스는 여전히 비워져 있었다.붓은 말라붙었고, 물통은 먼지가 앉아 있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지운을 보고 태평은 종종 궁금해했다. "음... 요즘은 그림 안 그려요?” “네.... 잠깐 쉬는 중이에요...” “혹시...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그냥… 태평씨 응원하느라, 잠깐 미뤘을 뿐이에요.” 태평은 미심쩍어했지만, 지운이 웃는 얼굴로 대답할 때마다 딱 거기까지만 믿기로 했다. 태평은 아직 몰랐다. 지운이 그림을 그만둔 건, 그림을 하나 내줬기 때문이라는 걸. 단순한 그림이 아닌..자신의 인생과 양심을 담보로 건네줬기에 지운은 더 이상 붓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밤, 태평은 첫 리딩 연습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지운은 거실 조명을 켜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눈이 살아있다’고. 그 한마디에… 그냥, 울컥하더라구요.” “그래. 그 말 들을 만한 사람이니까.” 지운은 웃었다. 조용히, 다정하게,그러면서도 그 안에 묻힌 눈물은 보이지 않게 감추며. 그날 밤, 태평은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지운은 조용히 담요를 덮어주고는, 한참 동안 그를 내려다보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무너지지 않게… 내가 뒤에서 다 받쳐줄게요.” 진실은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하루는 촬영이 조금 일찍 끝났다. 태평은 기분 좋게 웃으며 집으로 들어섰다. “ 나 왔어요. 오늘 꽤 괜찮았대요.” 지운은 식탁에 앉아 무언가 적고 있었다. 늘 그렇듯 따뜻한 미소로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역시 태평씨네요. 요즘 완전히 물 올랐어요.” “그 말, 감독님도 했어요.” 태평은 웃으며 가방을 내려두었다. 그러다 문득, 지운이 앉아 있던 테이블 너머의 풍경이 보였다. 작업실 한켠,언제나 그림으로 가득 차 있던 곳들...그리고 화구들. 하지만 요즘은 늘 비어 있었다. 먼지가 쌓인 붓. 물기가 말라붙은 파레트. 그림 대신 포스트잇 몇 장만 붙어 있는 벽. 태평은 슬쩍 물었다. “…당신, 요즘은 그림 안 그려요?” 지운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조금 쉬고 있어요. 요즘은… 태평씨 보는 게 더 재밌어요.” 그 말에 태평은 기분 좋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어딘가 미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당신이 그린다는 건, 숨 쉬는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 그게 멈춘다는 게… 그냥 그런 건가…?' 그는 조심스레 한 마디 더 꺼냈다. “…뭔가 있었어요?” 지운은 손을 턱에 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요즘은 태평씨 무대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한 시기니까요.” “…그래도 당신 건 당신 거잖아요.” 지운은 잠깐 눈을 마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림은...제가 행복할때 그릴거에요...그게 곳...이겠지만요...” 그 말에, 태평은 어쩐지 더 묻지 않기로 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묘한 이질감이 가슴에 작은 고리를 남긴 채로 조용히 자리를 지나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태평이 출연한 영화가 개봉된 지 며칠.입소문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야, 그 조연 누구야? 주인공보다 연기 잘하지 않았냐?” “연기 쩔던데… 처음 보는 얼굴 맞아?”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인터뷰 클립마다 서태평의 이름이 연일 오르내렸다. 그렇게 며칠 뒤....누적 관객 수 천만 돌파. 스크린 독점 논란까지 일어날 만큼, 영화는 미친 듯한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 포스터의 중심은 여전히 주연 배우였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그 옆, 옅은 미소의 조연 배우에게 쏠려 있었다. ▶︎ “영화 ‘그 겨울의 바다’, 조연 ‘서태평’ 열풍… 연기+비주얼 모두 잡았다.” ▶︎ “'신드롬' 수준... 영화보다 그가 더 남는다.” ▶︎ “광고계 러브콜 쇄도! 청춘 브랜드부터 하이엔드 패션까지.” 그리고 곧 태평의 휴대폰은 하루 종일 울렸다. “서태평 씨 되시죠? 저희는 MBC <놀토스타> 제작진인데요—” “안녕하세요, JT모델 기획사입니다. 전속 제안드리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유니레드 음료 광고 모델 관련해서... 가능한 일정 여쭤보려고요.” 문자 알림이 멈추질 않았다. 태평은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충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휴대폰은 몇 시간도 안 돼 다시 방전 직전이었다. 전화, 문자, DM, 광고 제안까지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연락 때문이었다. “...미치겠어요…” 태평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진심으로 울상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운은 살짝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태평씨.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된 소속사 들어가야 해요. 안 그러면... 금방 지쳐요. 소속사가 그런일 보조해주는 거니까요..” “그런데 어디가 괜찮을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많이 연락이 와서... 오히려 더 헷갈려요.” 지운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잠시 볼일이 있다며 밖으로 나섰다. 그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정실장님, 안녕하세요. 문화백입니다. 짧은 통화였다. 지운은 딱 필요한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안그래도 태평을 탐내던 차였기에 더더욱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저...태평씨 제가 아는곳중... 정말 괜찮은 곳 있어요. 기획력도 좋고, 소속 아티스트 관리도 세심하고요. 제가 아는 실장님이라 믿을 수 있어요. 혹시 싫지 않다면, 한번 만나보세요.” “...당신..설마...인맥빨로 힘 써준 거 아니죠?” 태평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지운은 그저 웃기만 했다. "아뇨...그 반대에요..어떻게 알은건지..제가 태평시 후원해준거알고 다리좀 놔달라고 하드라고요...태평씨를 무척 탐내고..마침 정말 좋은곳이기도하고...” 그렇게 태평은 지운의 추천으로 업계에서도 꽤 이름 있는 중견 기획사와 미팅을 하게 되었고, 며칠 후 정식 계약이 체결되었다. 기획사는 태평의 이미지와 가능성에 딱 맞는 팀을 꾸려주었고, 예능, 광고, 드라마까지 전방위 스케줄 조율이 시작되었다. 모든 게 숨가쁘게 굴러갔다. SNS 팔로워 수는 단 하루 만에 50만 명 돌파. 언론에서는 “올해의 뉴페이스”로 연일 그의 얼굴을 다뤘다.소셜 네트워크 거리에 나가면 “서태평이다!” 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촬영장 안팎은 팬들로 들끓었다. 촬영이 끝나고 지운의 집에 들린 태평은 태풍같은 그 중심에서, 태평은 얼떨떨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 “믿기지가 않아요…이게 진짜 나한테 오는 일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그럴 때마다, 조용히 그의 옆에 있던 지운은 말없이 물 한 잔을 건넸다. “수고했어요, 태평씨. 이제 시작이에요.” 태평은 슬며시 지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더 바빠지면 당신과 있을 시간이 줄어들지도 몰라요. 다 좋은데, 그게 유일한 단점이네요.” 지운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원래 성공하면, 필연적으로 바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같이 있잖아요?” “오늘도…하루 종일, 보고 싶어서 힘들었어요.” 그 말을 들은 지운은조용히 태평을 바라보다가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념으로, 우리 뭐 먹으러 갈까요? 그때… 제대로 식사 못했던 것도 있고.” “전 좋아요!” 태평이 환하게 웃으며 서둘러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지운이 그를 붙잡았다. “…음, 그러고 나가시게요?” “네? 왜요?” 지운은 태평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전에 있던 일 기억 안 나요? 그때는 단역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몰렸잖아요. 지금의 태평 씨는…음, 아마 걷지도 못할지도 모르죠.” 태평은 그제야 조금 머쓱해져 멈췄다. 지운은 웃으며 모자를 꾹 눌러 씌워주고, 마스크를 씌워줬다. “됐어요. 이제 나가요, 우리 스타님.” 길거리엔 불빛이 흐드러졌고,둘은 오랜만에 평범한 연인처럼 나란히 걷고 있었다. 조금은 설레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시간. 도착한 식당. 막 음식을 시키고, 마스크를 벗으려는 순간이었다. “서태평이다!!” 누군가의 외침. 그리고 곧장 몰려드는 인파. 사람들은 태평을 둘러싸고 싸인을 요구하고, 사진을 부탁하며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태평은 처음엔 반가운 마음으로 응했지만,금세 몰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지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조금 불안해졌다. 그는 고개를 빼꼼히 들어, 지운을 찾았다. 식당 한쪽에 서 있는 지운은부드러운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라고. 그제야 태평은 안도하며 팬들과 인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식사는커녕 한입도 못 댄 채 두 사람은 결국 식당을 나섰다.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따라붙었고, 어떻게들 알고 나타나는지 기자와 파파라치까지 몰려들었다. 태평은 지쳤고, 지운은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아 복잡한 골목 사이로 빠르게 안내했다. 겨우 숨 돌린 건 지운의 집에 도착한 후였다. 현관문을 닫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용한 밤, 사람들 없는 공간. 이제야 비로소 둘만의 시간이 돌아왔다. “역시, 이젠 밖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갖는 건 힘들어졌나 봐요.” 태평의 말에 지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엔 그리움도, 약간의 씁쓸함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TV에 태평의 얼굴이 나오고, 사람들이 “서태평!”을 외치며 지나가는 어느 길목. 지운은 조용히 백화점 유리창에 비친자신의 모습과 태평의 광고 배너를 번갈아 바라보다가웃었다. ‘이제… 보내줄 때가… 된 것 같아.’ 지운은 혼잣말처럼,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 그렇게 생각했다. 저번에 태평과 외출 했을때도 느껴진 인파들...연예기자...등등... 요즘의 태평은 누가 봐도 ‘라이징 스타’였다. 예능에서 빵 터지고, 드라마에선 눈물 흘리게 하고, 광고에선 웃기만 해도 제품이 품절되는 인물. 그리고 이제 그를 따라붙는 건 열광적인 팬들만이 아니었다. 디스패치. 파파라치. 사생 팬. 가십 기자. 그들의 눈과 귀는 예리하고 잔혹했다. ‘만약… 그런 그에게,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지운은 생각했다. 동성. 후원자. 자주 서로의 집을 드나드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스폰서’, ‘관계’, ‘이상한 소문’은 기사 제목이 되어버릴 것이다. “열애설 의혹, 문화백과 라이징 스타 서태평?” “예술계 후원자, 알고 보니 연인?” “서태평, 과거 극단 시절부터 이미…” "충격! 그는 동성애자인가?!" 어느 하나, 태평에게 이로운 게 없었다. ‘그럼… 나는… 태평씨한테 어떤 존재가 되는 걸까.’ 지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심장이 조용히 욱신거렸다. “…더는, 나랑 엮이면 안 돼요.그게… 당신한테는, 진짜 좋은 거니까.” 그날 밤, 지운은 휴대폰을 손에 쥐고 태평이 보낸 메시지를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오늘 당신 생각 엄청 많이 했어요.] 그 말 한 줄에, 지운은 손끝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그는 끝내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한편... 태평의 하루는 쉴 틈이 없었다. 아침 6시, 광고 촬영장 도착. 점심은 다음 스케줄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간단히 때웠고, 오후엔 예능 녹화, 저녁엔 잡지 인터뷰. 지칠 틈도 없이 달렸다. 스태프들이 챙기는 물, 의상, 스케줄표에 파묻혀 잠깐의 숨 돌림조차 허락되지 않는 날들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태평은 늘 지운을 떠올렸다. ‘이럴 때 당신이면 뭐라고 했을까.’ ‘밥은 먹었을까.’ ‘혹시…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하루 중 가장 짧은 틈, 그는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들었다. ' 지금 뭐해요?' 하지만 답장은 늘 몇 시간 뒤에야 왔다. '지금 작업실이에요. 너무 바쁘죠?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마요.' 그 말은 따뜻했지만, 태평은 그 안에서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왜 이렇게 말투가, 멀게 느껴지지...” 지운은 예전처럼 긴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고, 자주 웃던 이모티콘도 줄어들었다. 지운 역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태평씨는 바쁘겠지. 내가 괜히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되니까…지금 부터 조금씩 거리를...’ 그는 태평의 메시지 알림이 뜰 때마다 기뻤지만,일부러 몇 시간은 기다렸다가 답장했다. 자연스럽게 멀어지도록. 자연스럽게 자신을 잊도록.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생각하면서도, 서로를 대하는는 방식이 달랐다. 어떤 날은 태평이 통화 연결음만 듣다가 조용히 끊었고, 어떤 밤은 지운이 태평의 광고 영상 끝에 나오는 이름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다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는데, 감정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저작권 : 마늘바게트 님. ============================
2026-04-24
소설방
지식인
2026-04-20
갤러리
벚꽃 필 무렵-12- (펌)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태평과 지운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 앞에서 조용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을 위해 손꼽아 기다려온 순간...태평이 처음으로 출연한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이었다. “언제 시작하지…?” 태평은 괜히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고, 지운은 웃으며 그 손을 잡아 진정시켰다. “곧 시작해요. 너무 긴장하지마요...” 지루한 광고가 몇 편 지나고, 드디어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 시작한다…!” 둘은 동시에 등을 소파에 바짝 붙이고, TV를 응시했다. 말도 없이, 숨조차 삼킨 듯한 고요 속에서 눈빛은 화면 속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태평이 등장하는 장면이 마침내 재생되었다. 말그대로 단역이였기에 나온 시간은 정확히 5분이 좀 안되는 시간이였다. 여주인공에게 집착하는 전남친 역이였다. 여주인공에게 행패를 부릴때 남주인공한테 참교육을 당하고 쫒겨나는 장면이였다. “…저기 나온다.” 지운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태평은 본인의 얼굴이 화면 속에 비치는 걸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단역, 그 몇 분 안에 담긴 모든 감정과 표정, 목소리가 TV를 통해 흘러나왔다. 드라마 속 조명이 태평의 얼굴을 비출 때 지운은 옆에서 천천히 웃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토록 노력한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배우’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드라마가 끝나고, 화면이 조용히 어두워졌다. 잠시의 정적 속에서, 태평이 양손을 꼭 쥔 채 다리를 동동 굴리기 시작했다. “으아아… 아, 진짜…그 장면, 표정 더 세게 잡았어야 했는데… 목소리도 약간 떨렸던 거 같고… 아, 아까 그 장면 다시 찍고 싶다아…” 지운은 옆에서 그런 태평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후회하는 거예요, 지금?” “당연하죠!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흑…” 태평은 부끄럽고 속상한 듯 소파에 얼굴을 파묻었다. 지운은 조용히 태평 옆으로 다가가 앉아, 그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태평 씨.” “…네...” “오늘…정말 멋졌어요.” 태평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들어 지운을 바라보았다. “진심이에요. 카메라 너머로도 감정이 느껴졌고… 5분 안에 당신을 기억하게 만들었다는 건,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태평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해지는 말 한마디였다. 드라마가 방영되고 하루, 태평은 평소처럼 조용히 지운과 아침을 먹고 있었다. 휴대폰 알림이 몇 개 울렸고, 그중 하나를 대수롭지 않게 열어본 태평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왜그래요!?” 태평이 너무놀라 자리에서 벌떡일어나자 지운도 덩달아 같이 일어나며 물었다. “...이거... 저 맞죠...?” 지운은 태평이 내민 화면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거기엔 태평의 드라마 장면이 캡처되어 있었고, 그 아래엔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린 영상 썸네일이 보였다. ‘이 단역 배우 누구냐고요?! 비주얼이랑연기력 미쳤네?' '아니 ㄹㅇㅋㅋ 단역이 서브 남주보다 더 눈에 띄는게 말이됨? ㅋㅋ 그래서 저 배우 누군데?' '이럴거면 저 배우를 남주나 서브남주로 캐스팅하지..ㅉㅉ 캐스팅 수준하곤...' 각종 유튜브 쇼츠에 달린 댓글들은 하나같이 태평을 높게 평가하는 글 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트위터, 커뮤니티, 포털 실시간 검색어... 각종 플랫폼에서 ‘드라마 단역 배우’, ‘신인 남배우’, ‘한번만 나오고 빠진 아까운 배우’ 이런 키워드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었다. “...뭐지, 이거...?” 태평은 휴대폰을 쥔 채 멍하니 앉았다. 믿기지 않았다. 그저, 짧게 지나갈 줄만 알았던 자신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였다. 여기저기에서 전화나 카톡등이 쉴새 없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태평을 아는 모든 사람에게 연락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운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태평의 어깨를 두드렸다. 당황한 태평은 멍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보다, 순간적으로 화면을 꺼버렸다. “...이거... 나 아니야... 이럴 리 없는데...”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말. 그 말끝에 감겨 있는 혼란과 두려움은 태평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마치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손가락은 떨리고, 숨은 얕게 가빠졌다. “이게... 왜 이래요, ...? 왜... 이렇게까지 반응이 오는 거예요? 나 그냥... 단역이었는데... 대사 몇 줄 했을 뿐인데...” 지운은 조용히 그 옆에 앉아 태평의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당신이… 사람들 마음에 닿은 거예요. 그 몇 줄이었어도, 그 안에 감정이 있었으니까. 충분히 이유 있어요.” “...아직 준비 안 된 거 같아요. 나…” 태평은 고개를 푹 숙이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기쁜 게 아니라 두려운 감정이 더 컸다. 갑작스러운 기대와 관심이 오히려 자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지운은 이내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요...괜찮은 거에요...괜찮아요..." 지운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태평을 달래주며 진정시키자, 태평의 불안한 숨결을 아주 조금 가라앉혔다. 어찌 되었든, 태평은 마음을 다잡고 극단으로 향했다. 불안한 감정은 여전히 잔잔하게 가슴 한켠을 흔들고 있었지만 익숙한 공간에 발을 디딤으로써 조금이나마 평정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극단의 문을 열자, 안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왔어?! 야, 대박이던데? 너 진짜 뭐냐고~!” “어제 드라마 봤어! 와, 화면에서 얼굴이 살아 움직이더라니까?!” “네 이름 지금 커뮤 돌아다니는 거 알아? ‘단역치고 미친 연기력’이라며!” 동료 배우들이 너도나도 몰려와 태평을 둘러쌌다.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며 유튜브 영상 댓글을 보여주었고, 누군가는 “다음 오디션 붙으면 나한테 밥 사야 돼!”라며 농담을 던졌다. 태평은 벙찐 표정으로 그 사이에 서 있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뭐야, 다들 왜 이래요... 그냥… 한 장면 나왔을 뿐인데...” “그 ‘한 장면’으로 인생 바뀌는 거야, 바보야!”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웃었고, 그 웃음소리에 태평도 그제야 살짝 어깨에 힘을 뺐다.그제야 조금—정말 아주 조금, ‘내가 뭔가 시작했구나’ 하는 감각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입소문이 퍼진 건지 태평이 출연하는 극단의 공연은 갑자기 엄청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평소엔 널널하게 비어 있던 객석이, 그날따라 전석 매진은 물론이고 입구엔 티켓을 구하지 못한 관객들이 서성이기까지 했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로비는 북적였고, 복도는 사람들로 붐벼 지나다니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그 사태에 결국 극단의 사장이 태평을 따로 불러들였다. 사무실 문을 닫은 사장은, 평소와는 달리 꽤나 심각한 표정이었다. “태평 씨.” “...네...” “이거, 어떻게 된 일이에요. 관객 수가 평소보다 두 배는 넘었어요. 방금 통로 쪽에서 접촉 사고 날 뻔한 거 알아요?” 태평은 당황한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문책하는게 아닙니다... 태평씨가 잘 되는 거 응원해요. 하지만 극단은 공연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공간이에요. 의도치 않았어도, 지금처럼 사람이 몰리면 안전사고 납니다.” 사장의 말투엔 분명 나무람보다 걱정이 더 짙었다. 태평은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공연 때마다 질서 유지를 위해 무대 외적으로라도 도울게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관객 분산도 생각해볼게요.” 사장은 잠시 태평을 바라보다, 깊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의 말은 조용했지만, 그 안엔 수많은 감정이 겹겹이 담겨 있었다. “...언젠간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어요.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게 왔네요.” 사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다.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내려와, 조용히 사무실을 비췄다. “이 극단이라는 새장이, 이젠 태평 씨한테 너무 좁아졌나 봐요.그래서… 풀어드릴게요. 저 멀리… 날아가보세요.” 태평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마음속 어딘가가 묵직하게 울렸다. 지금 이 자리, 지금 이 공간은 자신이 처음으로 무대라에 서서 배우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첫공식적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어설픈 연기를 하며 풋내나던 시절... 작은 역할 하나에도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고, 무대 뒤에서 연습하며 밤을 새운 날들도 떠올랐다. “…저 아직, 그렇게 큰 사람 아닌데요...” “그래서 지금이 날아야 할 때예요. 다 커버린 새는 둥지 안에 있으면… 오히려 날개를 못 써요.” 사장은 천천히 일어나, 태평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외롭고, 무서울 거예요. 근데 당신, 그만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 항상 당신 편이에요.” 태평은 눈을 꾹 감았다. 벅차올라 터질 것 같은 감정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눌렀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또렷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오늘을 마지막으로, 태평은 더 이상 극단에 출근하지 않았다. 늘 아침마다 어깨를 움츠리며 걷던 그 골목길도,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맞아주던 조명 냄새도, 커피 향이 어렴풋이 밴 탈의실도 이젠 모두,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무언가를 끝내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보내는 이별. 태평은 공연이 없는 날, 허락을 받고 조용히 극단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무대는 텅 비어 있었지만,그 위에 서 있던 자신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의자에 걸쳐 있던 낡은 대본 한 권을 들춰보다가, 태평은 조용히 손가락을 그 위에 얹었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고마웠습니다. 진심으로.” 그 말은 관객에게,무대에게, 그리고 함께했던 모든 사람에게 향한 인사였다. 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본 태평은,창문 너머로 비치는 햇살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극단을 떠난 후, 태평은 곧장 다음 오디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까지 대사를 반복하고, 거울 앞에서 표정을 다듬고,지운의 조언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피나는 노력을 이어갔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지운은 태평에게 작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오늘은 좀 쉬어요. 내가 밥 사줄게요. 우리, 기념으로 한 끼 제대로 먹어요.” 태평은 처음엔 멋쩍게 웃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분위기의 레스토랑.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오랜만에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음식이 나오기 전,식당 한편에서 조용한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사람... 드라마 나왔던 배우 아니야?” “맞아 맞아, 단역인데 엄청 화제였잖아.” 시선이 서서히 태평에게 쏠렸고, 한두 명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식당 한편에서 스르르 피어오른 속삭임.눈치 빠른 몇몇 손님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태평을 향해 은근한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다.그 분위기를 느끼자마자,태평의 손이 아주 천천히 식탁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줄이고 싶다는 듯, 손끝이 다리 밑으로 숨어들고, 어깨도 따라 움츠러들었다. 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입꼬리는 힘없이 내려앉고, 눈동자는 한곳을 응시한 채 살짝 떨렸다. 방금 전까지 즐겁게 오고 가던 대화도 그 순간, 툭 끊긴 듯 조용해졌다. 말을 잇기엔 숨이 조여왔고, 웃음을 흘리기엔 시선이 너무 따가웠다. 태평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내쉬는 숨은 가늘고 길게,불안감에 조심스레 달래는 숨결처럼 흘렀다. 긴장이었다.무대 위에서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갑작스럽게 투명하지 않아진 자신을 마주하는 어색하고 낯선 긴장이었다. 그런 태평을 본 지운은 그가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몇 초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불편한거 맞죠..?.” 지운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비난도, 실망도 담기지 않은 말. 오히려 그 짧은 한마디엔 이해와 걱정이 담겨 있었다. 태평은 고개를 들었다. 지운의 눈동자는 여전히 따뜻했고, 그 어떤 판단도 섞이지 않은 채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갈까요?” 지운은 살며시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그의 미소는 “괜찮아요”라는 말보다 더 깊게 다가왔다. 태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어선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함께 식당을 나섰다. 태평을 먼저 내보낸뒤 사정을 설명한후 계산을 하고 지운은 나왔다. 바깥 공기는 차가웠지만, 태평은 지운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을 쉬는 게 조금은 편해졌다. “후… 이제야 살 것 같아요…” 지운과 함께 조용한 거리로 나와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태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깐 왜 그렇게 긴장됐는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무대에 그렇게 많이 서왔는데… 사람들 시선엔 익숙해졌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거든요.” 지운은 태평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의 시선은 태평을 바라보지 않고, 앞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하지만 말 대신 그 곁을 맞춰 걷는 발걸음이, 이미 대답처럼 느껴졌다. 태평은 살짝 어깨를 움츠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이상하죠…무대 위에 있을 땐, 그 시선들이 날 향하고 있다는 게… 차라리 편했어요. 근데… 오늘처럼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날 보니까… 마치… 숨을 곳이 없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 말에 지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잠시 후, 아주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건… 당신이 이제 사람들에게 진짜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로 가려진 역할이 아니라, 이제 사람들은 ‘태평’이라는 이름 자체를 보기 시작한 거니까.” 지운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태평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무서울 수도 있지만…그만큼, 소중한 일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태평은 조용히 그 말을 음미하듯 곱씹었다. 그리고는 작게, 하지만 천천히 웃었다. “...고마워요. 오늘, 당신 없었으면… 숨조차 못 쉬었을지도 몰라요.” 지운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태평은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둘의 손이 맞닿은 그 순간,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거리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더 단단히 닿아 있었다. 다음날이 되었다.예정대로 태평은 오디션을 보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꽤 유명한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라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경쟁률이 무려 1000:1 수준까지 가버렸기에 말이다. ‘그냥 내 최선이나 다하자.’ 그 생각으로 임했던 오디션이었고, 태평은 그저 묵묵히 오디션에서 자신으 모든것을 밀어붙이고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전화 한 통이 울렸다. “합격하셨습니다. 주연은 아니지만, 조연으로 정식 캐스팅 되셨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평은 눈을 크게 뜬 채 핸드폰을 멍하니 쳐다봤다. “...정말요? 제가… 붙었다구요?” 신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이름값 있는 현장. 그 자리에, 떡하니 자신이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손끝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곧장 지운에게로 달려갔다. 지금 이 기쁨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사람은 지운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늦게 도착하자 계단으로 달려내려갔고 신호등이 빨간 불이어도 망설였다. 달려갈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지운의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숨도 고르지 못한 채 소리쳤다. “저...붙어버렸어요!!..그것도… 오주원 감독 영화예요!!! 그 천만관객 감독의!!!” 태평은 숨을 제대로 고르기도 전에 말을 쏟아냈다. “이번엔… 단역도 아니고… 무려 조연이에요! 꽤 비중 있어요. 서브 남주 역할이에요!” 그 말에 지운은 눈을 크게 떴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정말요!?” 그 한마디엔 놀람과 기쁨,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감정이 한꺼번에 담겨 있었다. “처음엔 저도 안믿겼어요...! 캐스팅 관계자가...직접 전화 주셨어요! 태평은 두 눈을 반짝이며 숨차게 웃었다. 양 볼은 벌개져 있었고, 눈빛은 자신도 믿기 힘든 듯 떨려 있었다. 지운은 순간적으로 태평을 와락 끌어안았다. “잘했어요… 진짜 잘했어요…” 말은 짧았지만, 그 품 안에 담긴 벅참은 누구보다 깊었다. 태평은 그 품속에서 조용히,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나 혼자 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예요.” 태평은 지운과 기쁨을 나눈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맹렬한 연습과 촬영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 잡은 기회였고, 누구보다 절실했기에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겼다. 자연스럽게,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지운은 물론 서운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태평이 잘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모든 쓸쓸함은 기꺼이 감당할 수 있었다. ‘괜히 방해되면 어쩌나...’ 그런 생각에 일부러 연락도 자제하며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 한 통 없자 조금씩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결국 지운은 조심스레 인맥을 활용해 태평이 촬영 중이라는 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태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몇 번이고 울리기만 할 뿐, 연결되지 않았다. 지운의 표정에 조금씩 불안이 스며들 무렵, 바로 옆, 커튼 뒤편에서 들려오는 몇몇 여성 스태프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조연을 이렇게 갑자기 바꾸는 게 말이 돼요?” “그니까요. 전 캐스팅된 배우가 훨씬 좋았는데… 연기력도 진심이었고, 진짜 열심히 했잖아요.” “아이돌이라니… 귀엽긴 한데, 발연기잖아요. 이래서 백 없는 배우들은... 참…” 지운의 손에 들린 휴대폰이 스르르 내려갔다. 순간, 말이 사라졌다. “...그 배우님, 괜찮으려나…터벅터벅 걸어 나가던데… 꽤 충격 받으신 것 같던데요…” 순간, 마치 심장이 꾹 짓눌린 듯 지운의 숨이 턱 막혔다. 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연락이 없었던 이유 갑작스런 태도 변화, 그리고 오늘 현장에서 마주한 ‘공백’. 지운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태평씨…’ 지운은 멍하니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그 안엔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읽히지 않은 메시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답장이…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 불길한 생각이 지운의 가슴을 조용히 죄어왔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불안이 가슴 깊은 곳까지 밀려들었고, 지운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태평이 갈 만한 곳을 모조리 뒤졌다.학교, 극단, 연습실… 심지어는 혜정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까지. 그러나, 그 어디에도 태평의 흔적은 없었다.지운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눈가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마지막 희망처럼, 지운은 태평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르고,전화기를 귀에 갖다댄 그 순간 오피스텔 안에서 들려오는 진동음. 지운의 얼굴이 순간 새하얘졌다. 망설임 없이 부동산 중개소로 달려갔고,마스터 키를 손에 쥔 채 돌아와 문을 열었다. 그리고…그 안에서 본 건, 불행중 다행이었으나...전혀 상상하지 못한 태평의 모습이었다. 바닥엔 술병이 굴러다니고, 방 안은 쿰쿰한 알코올 냄새로 가득했다. 소파에 축 늘어진 채 잠든 태평. 떡진 머리칼, 수염, 퀭한 눈 밑… 모든 게, 무너져 있었다. 지운은 천천히 다가가조심스럽게 태평의 어깨를 흔들었다. “…태평씨…” 잠시 후,태평이 천천히 눈을 떴다.지운의 얼굴을 본 그는 순간 당황한 듯스스로 뺨을 꼬집었다. 현실임을 자각하자, 태평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황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해요. 지금 내 꼴이… 얼마나…” “태평씨, 그러지 말고… 제발 나와서, 잠깐만 나랑 이야기해요. 진심으로… 부탁이에요.” “그냥… 가요. 제발…” “…나… 죽어요, 그럼. 진짜예요… 제발…” 지운의 떨리는 목소리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그리고 얼마 뒤 조심스레 열리는 문. 문틈 사이로, 지친 얼굴의 태평이 조용히 나왔다. 눈가엔 미처 닦지 못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 두 사람은 거실에 나란히 앉았다. 말없이, 깊은 숨을 쉬며. 마침내 무너졌던 감정들이조금씩 말이 되기 시작했다. 태평은 문을 열고 나온 순간,아무 말 없이 지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품에 얼굴을 묻은 채 주저앉듯 무너져내렸다. “...흑… 흐윽… 아아…” 말도 되지 않는 울음이 마치 끊긴 숨처럼, 불쑥불쑥 터져 나왔다. 지운은 그런 태평을 말없이 끌어안았다. 등을 감싸 안고, 손끝으로 조용히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지운은 반복해서 속삭였다. 그 말 외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지금의 태평에게 필요한 건, 말보다도 ‘품’이었으니까. 태평은 펑펑 울었다. 참아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고, 억울함, 분노, 슬픔, 무력함이 마구 뒤엉킨 채 흘러내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울다 지쳐 숨을 몰아쉬던 태평이 지운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나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세상엔… 정말… 열심히만으론 안 되는 게…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는 체념도, 서러움도, 그리고 아주 깊은 절망이 실려 있었다. 지운은 그 말을 듣고도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대신 손을 뻗어 태평의 손을 꼭 잡았다. 태평은 여전히 지운의 품 안에 몸을 기댄 채,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눈물에 젖은 볼,떨리는 어깨,그리고 그 속에서 조용히 반복되는 한숨. 혜정이 죽었을때 이후론 보지못했던 모습이였다. 지운은 그런 태평을 조용히 감싸 안았다.입을 다물고, 말없이 등만 쓸어내렸다. 그 순간, 지운의 마음 속에서 단단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내가 바로잡을 거예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그러니, 부디… 계속 웃어줘요.”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지운은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품 안의 태평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지금은 위로가 먼저였다. 지금은 약속보다 지켜주는 온기가 필요했다. 지운은 마음속으로 그 다짐을 조용히, 또렷하게 새기고 있었다. “...좀… 쉬고 싶어요…” 울다 지친 태평이 나지막이 말하자, 지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방 안을 둘러보고, 널브러진 술병들과 구겨진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냥 두세요… 내가 할게요…” 태평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렸지만, 지운은 대답도 없이 움직였다. 걸레로 바닥을 닦고, 싱크대에 쌓인 컵을 정리하고, 쓰레기봉투를 하나 가득 채워 묶었다. 결국, 소파에 축 늘어진 태평은 더 이상 말리지 못한 채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다르다. 전보다 더 가볍고, 더 조용하게 마치 진짜 ‘쉼’이 찾아온 듯한 숨결.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지운은조심스럽게 그 위에 담요를 덮어주고,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왔다. 현관문을 닫고 난 뒤,지운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아~ 문화백? 웬일인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상대는 익숙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아… 안녕하셨어요, 김감독님. 그저… 급작스럽지만…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지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단호했다. 태평을 위해 조용히 싸움을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음…? 자네가??” 김감독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표정엔 놀람과 약간의 당황이 뒤섞여 있었다. 지운은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서요.” 김감독은 헛기침을 한 번 하며, 잠시 입술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아니… 자네가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다니 말이야. 일단 어디 한 번 사정을 들어나 보세.” 지운은 깊은 숨을 들이쉰 뒤,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게 태평의 상황과 자신이 본 모든 것들을 설명했다. 말을 아끼지 않았고, 감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설명이 끝나자,김감독은 혀를 끌끌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젊은 친구가 안타깝구만. 그 친구… 눈빛도 좋고 연기도 날것이었는데 말이야. 그 오감독… 내가 특별히 친한 건 아니지만…” 그는 말끝을 흐리다, 의미심장하게 지운에게 조용히 물었다. “자네… 정말 괜찮겠나? 모든 걸 할 각오가 돼 있나?” 지운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김감독은 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송감독이랑 오감독이 말이야…그 둘은 뭐, 형제처럼 지내. 죽고 못 살아.아마 송감독이 나서면야, 그 젊은친구 복귀시키는 건 일도 아니겠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근데… 내가 이런 말 하는 이유는 자네도 알 거 아냐. 자네랑… 그 송감독 사이가, 좀… 거시기하잖아…?” 지운의 얼굴이 단단해졌다. 그 눈동자에선 잠시 복잡한 감정이 지나갔지만,이내 다시 고요한 결의가 자리 잡았다. “…기회만 만들어 주십시오.” 지운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단했다.수화기 너머로 전달되는 그 목소리에,김감독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정적을 흘렸다. “자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김감독의 목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문화백이, 직접? 지금… 이 일로?” “네.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지운은 숨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 친구는… 이대로 무너져선 안 될 사람이에요.” 잠시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 그리고, 김감독의 씁쓸한 한숨. “…참, 별일이야. 자네 같은 사람이… 누굴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들으니, 내가 다 낯설다.” 지운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수화기만 꼭 쥐고 있었다. “...좋아. 내가 송감독하고 조만간 자리 한번 만들어볼게.” 지운은 그 말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감독의 목소리가 다시 낮게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구워삶든, 애걸복걸하든…자네가 직접 해.그 대신 자네,이 일… 정말 감당할 수 있겠나?” 지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그래. 근데, 자네도 알지? 송감독이랑 자네 사이가… 좀 쉽지않을텐데....” 그 말에 지운은 잠시 숨을 멈췄다가, 곧 작게 대답했다. “그래서 제가… 나서야 해요.” 한동안 조용하던 수화기 너머에서, 김감독이 짧게 웃는 듯한 숨을 흘렸다. “…참. 그 친구가 뭐라고...암튼 나중에 보세..” 뚝— 통화가 종료되자, 지운은 휴대폰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손끝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다시, 당신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게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저작권 : 마늘바게트 님. ============================
2026-04-23
소설방
벚꽃 필 무렵-11- (펌)
그로부터 약 2주가 흘렀다. 태평은 지운에게 말했던 것처럼, 휴학 기간 동안 예전에 일했던 극단은 물론, 시간이 맞는다면 방송국 엑스트라 일 등 도전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최선을 다했다. 그 덕분에 함께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줄어든 것이 솔직히 지운에겐 아쉬웠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태평의 모습을 보며 무척 흐뭇해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지운은 태평의 연극을 빠짐없이 챙겨보았다.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성장해가는 태평의 모습을 바라보며,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태평에게는 비밀로 하고 몰래 본 적도 있지만 말이다. 오늘도 그렇게 몰래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진동이 울리며 폰 화면에 뜬 발신자명 — '태평' — 을 본 지운은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언제까지 그렇게 말도 안 하고 몰래 보고 갈 거예요?" 지운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 결국 태평에게 들키고 만 것이었다. "아... 하하... 그냥 부담될까 봐 비밀로 했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처음엔 몰랐는데, 그렇게 매일같이 오면... 모르는 게 더 어렵겠네요." 지운은 웃으며 대답했고, 두 사람은 서로의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궁금해요?" "그럼요. 요즘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밥은 잘 먹고 있는지, 힘들진 않은지 걱정이 되죠." "그래요? 그럼... 현관문 좀 열어볼래요?" 현관문을 열어달라는 말에 지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태평은 이미 대문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는데 굳이 문을 열어달라고 하다니. 분명 또 장난을 치려는 게 아닐까 싶어, 지운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현관으로 향했다. 창밖 바닥에 비친 그림자가 태평이라는 건 뻔히 보였다. 지운은 피식 웃으며, 알면서도 일부러 당해주는 기분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보일 줄 알았던 태평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당황한 지운이 문턱을 넘는 순간, 현관문 뒤에 숨어 있던 태평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놀란 지운의 눈이 휘둥그래지자, 태평은 지운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놀랐어요?" "아오... 좀..." "...많이 놀랐군요. 미안해요. 당신만 보면 자꾸 장난을 치고 싶어서." 두 사람은 그렇게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에 들어서자 지운은 까치발을 들고 태평의 양 볼에 두 손을 얹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런 지운의 행동에 태평은 얌전히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이리저리 살펴보는 지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는데요?” “...살이 좀 빠진 것 같아서요.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 거죠?” “그래요...? 잘 챙겨 먹는데...” “오늘도 힘들고 피곤했을 텐데... 뭐하러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거예요...” “...당신은 내가 보고 싶지 않았나 봐요?” 태평이 살짝 토라진 표정으로 지운을 내려다보자, 지운은 당황한 얼굴로 급히 말을 이었다. “...그, 그런 게 아니고요! 당연히 보고 싶었죠!! 제가 찾아가면 되는데... 힘들게 여기까지 오셨다니까 괜히 마음이... 아니면... 전화라도 주셨으면 제가 바로 갔을 텐데...” 지운이 당황한 나머지 말끝을 흐리며 횡설수설하자, 태평은 그런 지운을 조용히 끌어안으며 말했다. “...집에 가고 싶었어요. 당신이라는 집에요. 그래서 내가 온 거고요. 잠깐만, 이렇게 안겨 있을게요. 나 오늘 정말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 정도 보상은 괜찮잖아요?” 태평의 말에 지운은 조용히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잠시 후, 태평은 지운을 부드럽게 놓아주더니, 갑자기 지운의 목덜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태평이 자신이 남긴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는 걸 안 지운은, 조용히 태평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검사(?)에 협조했다. “음... 살짝 흐려지고 있네요? 마음 같아선 오늘 다시 ‘리셋’하고 싶지만... 오늘은 제가 너무 피곤해서요...” “이러고 있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얼른 씻고 푹 주무세요. 제가 목욕물이라도 받아드릴게요. 그동안 좀 쉬고 계시고요.” 지운이 서둘러 욕실로 가 목욕물을 받으려 하자, 태평은 지운의 옷소매를 살짝 잡고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저 잠깐 소파에서 쉴게요...” 정말로 지친 듯한 태평을 뒤로 한 채, 지운은 욕조에 목욕물을 틀었다. 오랜만에 태평을 가까이서 본 데다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지운은 욕조에 입욕제를 한 스푼 넣으며 중얼거렸다. “피로 회복에 좋다니까... 한번 써보자.” 혼잣말을 하며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운 지운은, 조용히 거실로 나가 소파에 누워 있는 태평에게 다가갔다. 생각보다 피로가 많이 쌓였던 것인지, 태평은 이미 곤하게 잠든 채 가늘게 코를 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지운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편하게 자고 있는 사람을 굳이 깨워야 하나, 그대로 쉬게 해줄까— 하지만 그래도 씻고 자는 게 몸에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운은 잠시 숨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태평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태평씨.. 일어날 수 있겠어요? 목욕물 다 받아놨어요...” 조심스레 태평의 어깨를 흔들자, 그는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우, 잠깐 사이에 그만 졸았네요... 뭐라고 하셨죠?” 지운은 웃으며 다시 한 번 목욕물이 준비됐다고 말했다. “그래요...?” 태평은 별다른 머뭇거림도 없이, 자연스럽게 옷을 훌렁 벗어던졌다. 그새 금세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가 된 태평을 지운은 멍하니 바라보게 됐다. 그 시선을 느낀 태평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왜요?” “아, 아뇨...” 지운은 얼버무리며 시선을 피했다. 사실 한동안 못 봤던 태평이 이렇게 갑작스레 옷을 벗는 모습에, 어디서부터인가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낯설진 않은데, 어쩐지 오늘따라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지운은 태평이 편히 씻고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태평이 지운의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어디 가요?” 지운은 멈춰 서서 태평을 마주보며 말했다. “씻고 쉬시라고... 자리를 좀 피해주려고요.” 그러자 태평은 다시금 토라진 듯한 표정으로 지운을 올려다보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같이 씻고 싶은데... 그냥 가버릴 거예요?” 그 말에 지운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당황스러움과 어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뒤섞여,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태평은 부드러운 손길로 지운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조심스럽고도 자연스러운 그의 손길에, 어느새 지운도 태평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가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욕조 안으로 들어갔고, 태평은 지운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지운의 어깨에 턱을 살짝 얹었다. 따뜻한 물속에서 조용히 밀착된 두 사람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속삭이듯 흘러나왔다. “미안해요... 한동안 너무 바쁘게 지내느라 찾아오지 못했네요. 그래서 그렇게 몰래 공연만 보고 간 거죠?” “...전 괜찮아요. 그치만...” “그치만요?” “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에요. 근데 혹시 부담이 될까 봐... 몰래 본다는 게 그나마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좀 치밀하지 못했죠...” 지운의 말에 태평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 작은 솔직함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지운의 말이 끝나자, 태평은 조용히 지운의 목덜미 쪽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그곳엔 이전에 남겼던 자국이 옅게 흔적만 남아 있었고, 태평은 그 자리에 다시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지운은 그 감촉에 살짝 몸을 움찔했지만, 이내 태평의 따뜻한 입술이 주는 묘한 자극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됐다. 은근한 통증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태평의 애정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 순간, 지운은 고스란히 감각에 집중한 채로, 태평의 입놀림과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 “이렇게 옅어지기 전에 다시 새길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태평의 말은 부드럽지만 그 안엔 확실한 소유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말에 지운은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고, 태평의 온기가 더 가까이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지운은, 이번엔 조용히 몸을 뒤로 돌았다. 그리고 태평이 그랬던 것처럼, 지운 역시 그의 목덜미 쪽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그곳에는 예전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지운은 그 위에 자신의 존재를 조심스럽게 다시 새겼다. 서로가 서로에게 ‘여기에 있다’는 걸, 말이 아닌 손길과 입술로 전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태평의 단단해진 것이 은근히 지운의 뒤를 찌르듯 다가왔다. 따뜻한 물속에서 느껴지는 그 자극에 지운은 흠칫했지만, 놀라기보다는 어딘가 익숙한 듯한 표정으로 태평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잠시 흔들렸지만, 곧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준비도 못 했고, 피곤하시다 했으니까... 그냥 넘어갈까요?” 지운의 말투엔 배려가 묻어 있었지만, 동시에 아주 조금의 아쉬움도 함께 스며 있었다. 그 말에 태평은 지운을 꼭 끌어안은 채, 물속에서 그의 허리를 더 단단히 감싸며 천천히 속삭였다. “...준비하는 거, 생각보다 힘들죠...? 그렇게까지 힘든 줄은 몰랐어요... 그동안 저를 위해서... 정말 미안해요.” 태평의 낮은 목소리엔 미안함과 동시에 고마움이 섞여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지운은 어딘가 움찔하더니, 갑자기 “아?!” 하고 놀란 듯 반응했다. 지운이 눈을 크게 뜨고 태평을 바라보자, 태평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문을 열었다. “...음... 사실 좀 궁금했어요.저번에 얘기했었잖아요. 제 주변에도 한 명 있다고… 그 사람한테 물어봤거든요.남자끼리 관계 맺을 때 준비해야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지운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태평의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말에 당황했지만, 동시에 괜히 가슴 어딘가가 따뜻해지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아니에요. 저도 좋아서 한 건데요...” 지운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말에 태평은 살짝 숨을 내쉬고,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쉬운 밤이지만... 어쩔 수 없죠. 오늘은 그냥 넘어가죠. 전... 지금처럼 당신과 이렇게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그 말과 함께 태평은 욕조 안에서 지운을 더욱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따뜻한 물과 태평의 체온이 등에 고스란히 닿자, 지운의 몸이 미세하게 반응했다. 그 반응을 느낀 태평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지운의 앞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반응을 탐색하듯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건드렸다. “...응?” 지운은 놀란 듯 몸을 움찔했지만, 이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태평은 그런 지운의 반응을 애정스럽게 바라보며, 지운의 자지를 조물딱 거리며 만지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태평에 손길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태평의 손길을 음미하며 그대로 느낄 뿐이였다. 마치 자이로드롭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갈때 느껴지는 떨림마냥 오르가즘이 위아래 위위아래 아주 요동치는 바람에 지운은 자신도 모르게 입밖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지운의 반응에 더욱 흥분한 태평이 대놓고 한손으론 지운의 자지를 잡고 흔들고 나머지 한손으론 젖꼭지를 문지르자 지운은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듯한 전율이 느껴졌다. 좋아하는 사람 손에 이렇게 희롱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흥분감까지... “태... 태평 씨?!” 지운이 놀란 듯 몸을 움찔이며 고개를 돌렸다. “네.” 태평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오, 오늘은 그냥 넘어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지운은 자꾸만 밀려드는 자극에 숨소리가 점점 가빠졌고, 목소리 톤도 흔들렸다. 그런 지운의 반응이 귀엽기라도 한 듯, 태평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당신도, 좋은 거잖아요. 어른이... 왜 이렇게 솔직하지 못해요?” 태평의 낮고 느릿한 목소리에는 짓궂은 애정이 스며 있었고, 지운은 얼굴을 붉힌 채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은 멈췄지만, 몸은 이미 태평의 손끝에 반응하며, 부드럽고도 확실하게 열려가고 있었다. 지운은 그 순간 느꼈다. 더 이상 자신의 몸이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태평의 손에, 숨결에, 눈빛에 반응하며 스스로를 맡기고 있었다. 오롯이, 태평의 것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완전히 태평의 소유가 되어버리고 만것같았다. 그런 지운을 품에 안은 태평은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섬세하고도 집요하게 지운의 몸을 다뤘다. 절정 가까이 다가가면, 태평은 일부러 속도를 늦췄고, 그럴 때마다 지운의 숨은 더욱 뜨겁게 얽혔다. 그는 지운이 가장 예민한 순간에 머물도록 조율하고 있었다. 끝없이 애태우고, 달아오르게 하고, 또 밀어내며, 지운의 의식은 어느새 오직 태평에게만 집중되어갔다. “하아… 하… 태, 태평 씨?!” 지운의 목소리는 숨이 섞여 흐트러졌고, 그 안엔 간절함과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왜요?” 태평은 평온하면서도 묘하게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그게… 하아… 저… 그… 그만… 가버리게… 해주세요…” 지운의 말은 끊어졌고, 호흡 사이마다 조심스레 간청이 묻어났다. 하지만 태평은 아주 단호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안 돼요.” “네…?! 왜, 왜요…? 어, 어째서… 흐읍…” 지운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태평은 그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당신이 완전히 내 손에 길들여질 때까지… 난 멈추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이제 내 거니까. 앞으로는 나 말고는… 누구와도, 어떤 식으로도 살 수 없게 만들 거예요.” 그 목소리는 숨결처럼 뜨겁고, 선언처럼 확고했다. 지운의 몸은 이미 그 말에 반응하듯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 세 시간 가까이, 지운은 태평의 손길에 이끌려 끝없이 흔들렸다. 쉬어갈 틈도 없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자극 속에서, 지운은 끝내 힘이 빠진 채 몸을 떨며 애절하게 입을 열었다. “...제발... 이제, 정말... 그만...” 지운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고, 두 눈엔 완전히 녹아내린 듯한 체념이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태평은 그제야 만족한 듯 지운을 품에 안고,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진짜 당신이 내 것이 된 것 같네요.” 그 말과 함께, 태평은 지운의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지운이 마침내 절정에 이를 수 있도록 마지막 자극을 전해주었다. 오랜 시간 억눌려온 감정과 감각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듯, 지운은 해방감에 가까운 오르가즘을 느끼며 그대로 몸을 떨었다. “하아… 하읏…” 순간, 지운의 몸 안에서 깊게 쌓여 있던 것이 한꺼번에 분출되었다. 길고 묵직하게 이어지는 쾌감의 여운 속에서, 지운은 자신도 놀랄 만큼 많은 양을 내뿜고는 멍하니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태평은 피식 웃으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나 없다고 이렇게까지 쌓아놓은 거예요?” 지운은 대답조차 할 힘이 없는 듯, 온몸의 힘이 빠진 채 헉헉 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런 지운의 이마에 태평은 조용히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그제야 비로소, 두 사람은 함께 샤워를 마치고 조용히 욕실 밖으로 나왔다. 다리에 힘이 빠진 듯, 지운은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몸이 덜덜 떨리는 걸 느낀 태평은, 말없이 그를 가볍게 들어 안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못 걸을 정도로… 그렇게 좋았어요?” 지운은 대답 대신 숨만 내쉴 뿐이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삽입은커녕, 그저 손끝의 자극만으로 이토록 무너졌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이 정도로 태평에게 완전히 휘둘리고 있다는 건 이제 자신이라는 존재의 주도권, 아니 ‘소유권’ 자체가 그에게 완전히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운은 태평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이 사람 앞에선, 나는 이제 끝났다...그에게 저항조차 못할것이다..…’ 라고 말이다. 지운을 조심스럽게 안은 태평은, 그의 몸을 부드럽게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는 그윽한 눈빛으로 지운을 바라보며, 마치 마지막 확인 사살을 하듯 속삭였다. “그래서… 이제 당신은 누구 거라고요?” 지운은 얼굴까지 붉어진 채, 작게 중얼거렸다. “...태, 태평 씨 거요...” 그 대답에 태평은 만족한 듯 입꼬리를 올리더니, 지운의 입술에 다시 한 번 천천히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지운을 껴안은 채, 그대로 그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방 안엔 숨소리만이 조용히 맴돌았고, 지운은 아직도 남아 있는 태평의 체온과 맨살이 맞닿는 감각에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격렬하게 휘둘린 후임에도, 태평의 손길 하나에 다시 몸이 반응하는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솔직했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지운의 몸은 완전히 길들여져 있었다. 태평이 건드리기만 해도, 언제든지 다시 불이 붙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태평은 지운을 마치 애착 인형을 끌어안고 자는 아이처럼, 단단히 품에 안고 잠에 들었다. 자신에게 꼭 맞는 무언가를 품에 안은 듯, 표정은 무척 평온했고, 숨결은 일정하게 이어졌다. 지운은 태평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도 잠에 빠질 수 있었다.태평의 온기 속에서,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밤을 채워갔다. 아침이 되고서야, 지운은 자신을 껴안고 있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제야 조심스레 눈을 뜨자, 바로 눈앞에 태평의 얼굴이 보였다. “깼어요?” 태평은 다정하게 지운의 앞머리를 쓸어내리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네…” 지운이 살짝 부끄러운 듯 눈을 깔자, 태평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어젯밤, 좀 힘들었죠?” “아뇨… 정말 좋았어요.” 지운이 조심스레 대답하자, 태평은 한 박자 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런 말 안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말할게요. 사랑해요. 당신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평은 지운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지운은 눈을 감고 그 입맞춤을 천천히 받아들이며, 아침부터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한동안 침대 위에 그대로 기대어 있다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을 하나씩 주워 입기 시작했다. 새하얀 아침 햇살이 천천히 방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오전이 아직 한창일 무렵, 옷을 다 입은 태평은 1층으로 내려와 자신의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런 태평의 모습을 발견한 지운은 호기심이 생겨 조용히 다가가 그의 옆에 섰다. 지운의 시선을 느낀 태평은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내며, 지운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사실, 그동안 연극뿐 아니라 방송국 엑스트라도 도전해봤고, 오디션도 몇 번 봤어요. 번번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태평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지운에게 내밀며 말했다. “…정말 소소한 단역이지만, 5분 정도는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짧지만, 민폐 끼치지 않게 연습은 제대로 하고 싶어서요.” 그의 눈빛에는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당신이 옆에서 봐줄래요?” 지운은 그 대사를 받아들이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연인인 동시에, 서로의 무대 뒤에 있어주는 든든한 관객이자 응원자였다. 태평이 본격적으로 대본 연습에 들어가자, 지운의 눈에는 그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고 멋져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마음속 깊이 눌러두고, 그는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태평을 바라보았다. 태평의 억양, 표정, 감정선. 그 중간중간에 미세하게 드러나는 약점이나 흐트러짐을 지운은 예리하게 포착했다. “...다시.” “어...? 괜찮았던 것 같은데…” “다.시.” 지운의 약간 단호한 목소리에 태평은 움찔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빛에 살짝 기가 죽은 기색이 비쳤지만, 곧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연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지운은 속으로 작게 웃었다. 물론 진심으로 태평의 연기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사실 어젯밤, 무려 세 시간 동안 꼼짝없이 태평에게 당한 것도 떠올랐다. ‘이 정도 복수는… 귀엽게 넘어가 주겠지?’ 지운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다음 지적을 준비했다. 그의 눈빛엔 교정자의 날카로움과, 연인을 향한 짓궂은 애정이 교묘히 섞여 있었다. “태평 씨, 배우가… 정말 되고 싶은 거예요?” 지운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농담이나 장난기 없이, 낮고 차분하지만 단단한 울림이 있었다. “무… 물론이죠!!” 태평은 당황한 듯 급히 대답했다. 하지만 지운은 한 박자 쉬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런데… 왜 그래요? 제대로 안 하잖아요.” 순간, 태평의 표정이 굳었다. 지운의 말투는 부드럽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항상 다정하기만 했던 지운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말하는 건 흔치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태평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가벼운 태도로 이 자리에 서 있었는지를. 분야는 다르지만 지운은 현대미술계에서 이미 이름을 떨치고 있는 작가이자 예술가였다. 수많은 전시와 협업, 크리틱 속에서 다져진 시선은 웬만한 연극영화과 교수보다도 훨씬 더 깊고 날카로웠다. 그런 지운이 지금, 자신을 위해 이만큼 진심을 내고 있다는 걸… 태평은 늦게서야 깨달았다. 몇 번이고, 지운의 날카롭고도 까다로운 지도를 받으면서 태평의 연기는 눈에 띄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사 톤, 눈빛, 호흡, 손짓 등 무려 10가지가 넘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그것들은 하나씩 줄어들었다. 열 개가 일곱 개로, 일곱 개가 네 개로, 마침내는 지운이 입을 열 필요조차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해가 중천에 떠올라 어느새 오후 2시가 되어서야 태평은 마침내 지운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운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미소를 짓는 그 모습만으로도, 태평은 스스로를 조금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다. 쉬는 시간 없이 몰아친 덕에, 태평은 기력이 빠진 듯 그대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이 느껴질 정도로, 집중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 정도로 벌써 지치면… 앞으로 안 될 텐데요?” 지운이 팔짱을 낀 채 태평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태평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물론이죠... 아직... 거뜬합니다...” “그래요? 그럼… 다시 가볼까요?” 지운의 말에 태평은 순간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지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설마… 어제 일 복수하려는 건 아니죠?” 그 말에 지운은 흠칫하며 눈을 피했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지만, 얼굴에는 이미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아, 아냐… 그런 거 절대… 아니에요... 전 그냥...” “...맞네. 완전 맞잖아요, 그쵸?” 태평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지운을 바라보았다. 지운은 끝내 시선을 못 마주친 채 더듬거리다, 태평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어제 그렇게… 분했어요?” “아… 몰라. 안 도와줄래… 괜히 오해나 받고…” 지운은 일부러 툴툴거리듯 말하며 휙 돌아섰다. 토라진 척 등을 돌렸지만, 눈에 살짝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걸 눈치 채지 못한 태평은 순간 당황한 기색으로 서둘러 지운을 뒤에서 껴안았다. “...미안해요… 난 그냥 혹시나 해서 그랬어요. 제발… 가지 말아요.” 태평의 팔에 감긴 채, 지운은 순간 당황했다. 아무렇지 않게 껴안는 그 손길 하나에 지운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이후, 지운의 몸은 완전히 태평에게 길들여지고 말았다. 이젠 그의 손끝만 스쳐도, 심장은 요동치고 숨결이 흐트러졌다. 지운은 그런 자신이 조금은 민망했지만, 동시에 태평의 따뜻한 온기 속에서 조용히 안겨 있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수 없었다. “아… 알겠어요. 어른인 제가 이해할게요. 자, 자! 다시 갑시다!” 지운은 결국 웃으며 태평을 바라보며 손뼉을 쳤다. 그 말에 태평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날 이후로 태평은 하루 일과를 마칠 때마다 어김없이 지운의 집을 찾았다. 지운 앞에서 대본을 펼치고, 땀을 흘려가며 맹렬히 연습을 거듭해나갔다. 그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점점 다듬어지는 눈빛, 감정이 실린 목소리, 자연스러운 동선… 지운의 날카롭지만 따뜻한 지도와, 태평의 끈기 있는 노력은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덕분에, 극단 내에서도 태평의 실력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요즘 연기 완전 달라졌어.” “몰입도 장난 아니던데?” 연극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해졌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태평이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 드라마 촬영 당일이 되었다. 그날 아침, 지운은 직접 차를 몰아 태평을 촬영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운전석 옆에 앉은 태평은 긴장한 듯 가슴을 크게 들이쉬며 깊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지운은 웃으며 손을 뻗어 태평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긴장하지 마요.이미 충분히 잘해왔잖아요. 오늘은 그냥, 그동안 연습한 거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돼요.” 지운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그 안엔 확신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하아… 그래도 좀 떨리네요. 막상 이렇게 오니까...” “그럴 수 있죠. 근데요... 그 떨림도 감정이에요. 지금의 감정, 그대로 대사에 녹여요. 괜히 가라앉히려 하지 말고… 마인드 컨트롤, 우리 같이 해볼까요?” 지운은 자신이 평소 전시를 앞두고 사용하던 루틴처럼, 태평에게 심호흡과 짧은 자기 주문을 알려주었다. 태평은 그걸 따라하며 서서히 눈빛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차 안엔 조용하고 단단한 응원의 기류가 흘렀다. 촬영장 안으로 들어간 태평을 멀찍이 따라가며 구경하던 지운은, 카메라 세팅과 스태프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바라보며 조용히 현장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아니… 문화백 아니야? 여긴 무슨 일이야?” 지운은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가, 곧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정감독님. 안녕하세요. 감독님은… 어떻게 여기까지…” 정감독은 피식 웃으며 팔짱을 끼고 대답했다. “이 사람, 싱겁기는. 감독이 촬영 현장에 왜 있겠어? 이 드라마 총책임감독이 나니까, 당연히 있지~” 지운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그렇네요…” 정감독은 잠시 지운을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근데, 자네는? 이 바닥에선 얼굴 좀 보기 힘들다 했더니… 혹시 촬영 구경 온 거야?” 지운은 잠시 태평 쪽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네, 사실 오늘 제가 후원하는 친구가 단역으로 출연하게 돼서요. 잠깐 응원차 따라왔습니다.” 정감독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아하~그래? 누군데?” 이참에 태평을 업계 거장들에게 제대로 얼굴도장을 찍게 하겠다는 생각이 든 지운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촬영장 한쪽 구석에서 긴장한 채 대본을 손에 쥐고 연습 중인 태평을 가리켰다. “저쪽에 서 있는 친구예요. 오늘 단역 맡았는데, 가능성이 보여서요.” 정감독은 지운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태평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잠시 눈여겨보던 그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오...? 단역이라고? 근데 비주얼이 단역치고.. 아주 괜찮은데? 화면에 잘 뜰 얼굴이네… 오오...!? 표정도 살아 있고…” 정감독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운 쪽을 슬쩍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크게 될지도 모르겠는걸. 실력은 얼마나 될지, 한번 기대해봐야겠네?” 지운은 태평을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이 태평의 시작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용히 벅차올랐다. 촬영이 시작되고, 마침내 태평의 차례가 되었다. 지운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모니터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대사는 짧았고, 등장 시간은 고작 5분 남짓. 하지만 태평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지운이 기대했던 것 이상을 보여주었다. 단 한 장면, 단 한 줄의 대사. 그 속에서도 감정의 흐름이 뚜렷했고,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사 너머에 인물의 서사가 느껴질 만큼, 태평의 연기는 단단하고 몰입감 있었다. 컷이 떨어지고, 잠시 촬영이 중단된 순간. 현장 이곳저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누구야, 방금 저 친구?” “단역 아니었어? 괜찮던데?” “눈에 딱 들어오던데, 처음 보는 얼굴이지?” 지운은 그런 반응들을 듣고도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저 조용히, 태평을 향해 흐뭇한 시선을 보냈다. 그토록 애쓰고 연습하던 그의 시간이 지금, 이렇게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지운이 감탄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태평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던 그때였다. 갑자기 정감독이 급히 다가오더니,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다짜고짜 말을 뱉었다. “야, 그 친구 예사롭지 않은데? 문화백, 자네가 후원하는 친구라고 했지?!” “네, 감독님. 정말 가능성이 보여서… 제가 조금 돕고 있...” 지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감독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지운 쪽으로 바짝 다가서며 열변을 토했다. “그 친구 인적사항 좀 다시 챙겨봐야겠어! 다른 감독들한테도 바로 추천 넣어야지! 이거… 대박 인재 하나 발굴하는 느낌인데?!” “...진짜요? 감독님!!” 지운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정감독의 손을 덥석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 표정에는 자랑스러움과 뿌듯함, 그리고 벅찬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태평은, 연기를 무사히 끝낸 기쁨을 안고 지운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그런데 지운이 다른 사람과 손을 꼭 맞잡고, 서로에게 웃으며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내는 모습을 보자 태평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가슴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질투였다. 분명 지운은, 이제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된 줄 알았다. 어젯밤, 태평의 품에 안겨 완전히 자신의 소유가 되었음을 인정했으면서.. 태평의 손끝이 스르륵 말려 들었다. 마음이, 묘하게 쓰렸다. ‘저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텁텁한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태평은 조용히 지운에게 걸어갔다. 이미 손을 놓고 대화를 마무리한 지운은 태평이 다가오는 걸 보고 환한 얼굴로 말했다. “태평 씨! 봤어요? 다들 반응 되게 좋았어요!” 지운은 흥분한 듯, 방금 전 정감독과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태평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네.., 들었어요. 분위기 좋더라구요.” 태평은 눈은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조금은 단단한 기색이 느껴졌다. 둘은 태평의 촬영일정이 끝났기에 다시금 주차가된 지운의 차로 향했다. 출반하기전 지운은 태평의 미묘한 표정변화를 관찰했다. 지운은 그 미묘한 표정을 눈치챘는지, 조용히 태평의 팔을 붙잡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기분 안 좋은 거 같은데…”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웃지 마요. 손도… 잡지 말고요.” 태평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그 안에 깃든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운은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살짝 미간이 좁혀지고,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촬영장 한켠, 주차장 차안... 두 사람만 조용히 고요 속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지운은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태평 쪽으로 시선이 향하며,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랬어요? 그렇게 보여서… 속상했어요?” 태평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지운은 그 고개 끄덕임 하나에 마음이 스르륵 녹는 듯했다. 그는 작게 웃으며, 두 손으로 태평의 손을 감싸쥐었다. “그럼 앞으로 그렇게 안 할게요. 태평씨 앞에서만 웃을게요. 태평씨...손… 이 손만 잡을게요.” 태평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는 말없이 지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지운을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괜히… 내가 너무 애 같았죠.” “괜찮아요. 음… 이거 질투인가요?” 지운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태평의 얼굴을 바라봤다. 살짝 기울어진 고개, 눈꼬리 아래로 스며든 웃음. 마치 ‘귀엽다’는 말 대신 던진 질문처럼 들렸다. 태평은 당황한 듯 눈을 피하다가, 결국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가 봐요.” “질투하는 거예요, 지금?” “...질투 맞는 거 같아요. 당신이, 다른 사람한테 웃는 거 보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태평은 고개를 떨군 채, 조심스레 지운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살짝 더 힘을 줘서. 지운은 그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손을 이끌어, 자기 가슴팍에 툭 얹었다. “그럼 이렇게 해요. 앞으론... 질투 날 때마다 여기 얘기해줘요. ‘당신은 내 거다’ 하고. 그러면 제가 더 안심시켜줄게요.” 태평은 그 말에 입꼬리를 꾹 누르며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은 내 거예요.” “…좋아요. 전...완전히 태평씨 거에요.” 주변의 소음과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둘만의 대사가 울리고 있었다. ============================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저작권 : 마늘바게트 님. ============================
2026-04-22
소설방
벚꽃 필 무렵-10- (펌)
욕실에 들어선 태평이 손을 내밀자 지운역시 욕실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태평은 뒤에서 지운을 끌어 안은채 떨어지는 물을 맞고 있었다. "...이미 씻었는데...또 씻게 생겼네요?" "...그러게요...그래두...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좋네요.." 태평은 느닷없이 양손을 뻗어 지운의 배를 쓰담쓰담 하더니 지운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농담을 하였다. "...그래서 내 애는 언제 낳아줄거에요?" "...더 노력 해보세요~ 그래야 생기죠~" 지운은 그런 태평의 농담을 이제는 능숙하게 받아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띄고 있을때였다. 이제는 자신의 장난에도 능숙하게 받아내는 지운덕에 무엇인가 더욱 즐거워진 태평은 그대로 지운의 옆구리를 간지럼 태우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태평에 행동에 지운은 놀라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태평의 정감있는 손길이 좋기도 한 복잡미묘한 느낌에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아?! 간지러워요!! 하지마요!!" 그럼에도 계속 희죽희죽 거리며 장난을 치던중 몸을 움치리다 못한 지운이 뒤돌아보자 태평은 그대로 고개를 숙여 지운과 가볍게 키스를 하고야 말았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전 당신이 너무 좋아요.." 지운은 그런 태평을 올려다보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런 지운에 행동에 태평은 지운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반대로 장난기가 생긴 지운은 그저 허허실실 웃기만하며 답해주지않았다. 그러자 은근 애가탄 태평은 대답해달라고 어리광을 부리며 같이 장난을 쳤다. 지운은 전시회가 끝나 한동안은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그덕에 학교와 극단때문에 지운에게 오지못한 날이 있던 태평은 보고싶다고 어리광을 부리자 지운은 태평이 지내는 오피스텔로 찾아갔다. 그런 지운을 반갑게 맞이한 태평은 한동안은 거의 둘이 살다시피했다. 밖에 나가있는게 아니라면 서로 눈만 마주쳐도 관계를 맺고 입맞춤을 하고 꼭 달라붙어서 영화를 본다던지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여보세요? 네~ 제가 서혜정은 저희 어머니고 제가 보호자되는데요.??"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는 건가 싶었던 지운은 태평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때였다. 태평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더니 옷을 대충 주워입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였다. 뭔일이 생긴건가 싶어 지운역시 옷을 빨리 입고 태평의 뒤를 따라갓다. "태평씨!! 태평씨!! 잠시만요!! 뭔일이에요!?" 태평은 갑자기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며 다급하게 지운에게 말했다. "...저..저좀..엄마..병원에...데려가 주세요...빨리...지금...요..빨리.." 태평에 다급한 부탁에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최대한 빨리 밟은 지운덕에 10분도 안되어서 병원에 도착한 태평은 차가 멈추자말자 정말 쏜살 같이 뛰쳐 나가는 것이였다. 그런 태평의 뒤를 너무나도 힘겹게 지운은 따라갓다. 덜덜 떨리는 몸...사색이된 얼굴...그리고 초점없는 눈동자... 태평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였다. 의사는 그런 태평에게 계속 무엇인가 말하고 있었다. 지운이 가까이 가자 그제서야 태평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의사가 말하길 곧있으면 태평의 엄마인 혜정이 상태가 악화되어 임종 할 수도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던것이였다. 태평은 영혼이 가출한거 같은 상태로 터덜터덜 걸어 호스피스 병동안으로 들어섰다. 태평에 앞에 산소호흡기를 장착한채로 의식이 없어 보이는 듯한 혜정이 금방이라도 끊어 질듯한 갸날픈 호흡을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겨우 해내고 있을 때였다. "....엄마..." 태평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혜정의 얼굴을 만지자 혜정은 마지막으로 아들인 태평의 얼굴을 보고 가고 싶어서 온힘을 짜냈던 것인지 겨우 부스스 눈을 뜨더니 눈물 한방울 뚝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감기는 눈...점점 약해지는 호흡....곧 이어진 바이탈 싸인의 끊김...임종 이였다. 바이탈 싸인이 끊기고 삐~~~~~~소리가 이어지자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달려워 혜정의 상태를 확인했다. "...임종하셨습니다.." "..." 태평은 의사말에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혜정의 얼굴을 쓰다듬어보았다. "...에이...선생님...무슨 말씀을....이렇게 따뜻하고 아직도 숨소리가 들리는데..." "...사망하시고 나서...폐에 남은 공기가 세어나오는 과정입니다..." "...엄마..? 잠깐만 일어나보자...응? 선생님이 지금 나 겁주는거 같아... 일어나서 아직 멀쩡한것만 보여주고 자자...응?!" 태평은 혜정의 양볼을 부여잡고 처음에 가볍게 흔들다가 점점 격해지자 의료진들은 그런 태평을 애써 때어내려했다. "엄마!? 장난 그만쳐!! 그만 하라니까!? 일어나!! 일어나라고!!! 어!?" "태평씨..." 태평은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건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더니 이제서야 혜정의 죽음이 와닿은건지 그자리에서 오열을 하며 비탄이 섞인 절규를 토해내었다. "어...음마...어...마...엄마!! 어...음마!!! 어..." 눈에선 눈물이 쏟아지고....코에선 콧물이... 입에선...침이주르륵 흐르며 마치 광인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울부짖었다. 그런 모습에 의료진들은 숙연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5분가량 울부짖던 태평은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혜정의 시신으로 향하더니 말했다. "...집에 가야지...?! 건강해지는건 바라지도 않았지만..적어도 내가...내가..잘되서 TV도 나오고..영화에도 나오는것만은 꼭 보고 간다며?! 어?!" "...이제 그만 나가주셔야 합니다...고인의 시신 인도는..." "누가 고인이에요!? 네?! 죽긴 누가죽어!!! 어?!" 태평은 마지막 순간 까지도 혜정의 죽음을 부정하며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런 태평을 본 지운역시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찌 할줄 몰랐지만 현재 태평을 챙길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음이 냉정하게 보였기에 지운은 태평에게 다가섰다. "...태평씨...그러지말고..일단 나가요...어서요.." "..당신까지 왜그래요?! 저거 봐요!! 혈색도 돌고...숨도 아직...가슴이 들락날락 하면서 숨도 쉬는데..?! 저게 어떻게 죽은 거에요!? 놔요!!" 지운은 있는 힘을 다해 태평을 온몸으로 밀어내며 밖으로 나섰다. 태평은 발광하며 나가지않으려 했다. "...제발!! 태평씨!!!" 지운은 젖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고 의료진의 도움으로 겨우 태평을 데리고 병실에서 퇴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넋이 나간채로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웅크려 앉아 있던 태평에게 병원측 관계자가 다가왔다. "...저...서혜정님 보호자 되시죠...?" "...저랑 이야기 하시죠...지금 보시는 것처럼 멀쩡하게 대화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요..." "...실례지만 관계가...?" 관계가 어떻게 되냐는 말에 지운은 잠시 망설였다. 관계라...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말이다.. "...그냥...가까운...지인 입니다...후견자 이기도 하구요.." 병원 관계자는 잠깐 의아해 하더니 잠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 하는듯했다. 잠시후 확답을 받은건지 병원관계자는 지운에게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운 또한 겪어 본적이 있는 일이였기에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고 뭘해야할지도 알았다.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 태평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어렵고 심지어 재정적인 부분도 들었기에 지운은 자신이라도 정신차리고 태평대신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급히 전화를 돌려 인맥을 활용해 장례를 치룰 수 있게 장례식장과 상조회사를 알아보았다. 인맥의 도움으로 장례식장과 상조회사를 무사히 지정받을 수 있었던 지운은 태평에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태평씨..." "..." 태평은 말없이 지운의 어깨에 기대 하염없이 눈물만 주륵주륵 흘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혜정의 시신을 인계받으러 직원들이 도착했다. 태평 대신 모든 일은 지운이 정성스럽게 진행했다. 혜정의 시신이 맞음을 확인해주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해야했기에 지운은 넋이 나가 있는 태평의 손을 잡고 차로 향했다. 차에 태평을 태운 지운은 말없이 그저 운전만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지운은 상조회사의 배려로 급히 상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태평에게도 상복을 건네려고 했지만 태평은 그제서야 실감이 더욱 확실해진듯 주저앉아 펑펑 울며 말했다. "...나때문이에요..내가 죽인거에요...나같은게 태어나지만 않았어도...나때문에 고생만하다가...죽은거에요...나같은게!!! 태어 나지만 않았어도!!! 나같은게!!!" 지운은 그런 태평의 뺨을 한대 후려쳐버리고 말았다. 그덕에 초점이 돌아온 태평이 지운을 빤히 쳐다보자 지운은 눈물을 찔끔찔금 흘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좀 편해요?! 그렇게 말하면...혜정이가...얼마나 슬퍼할지는 생각 안했어요?! 혜정이는...태평씨 하나 바라보고 살았는데...미안하지도 않아요!?" "그럼...저는 어떻게 하라고요...저는..." "살아야죠...성공해서 높은곳 까지 가야죠...그래야 하늘에서 혜정이가 내려다 볼때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안그래요?!" 지운에 말을 들은 태평은 다시한번 지운을 끌어안으며 펑펑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태평이 어느정도 가라앉은건지 조심스래 상복을 주섬주섬 입었다. 단 몇시간만에 초췌해진 얼굴을 본 지운은 가슴이 찢어지는듯했다. 장례식장 관계자에게 며칠전 가발을 쓰고 찍었던 가족 사진을 건네자 금새 영정사진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영정사진이 나오자 태평은 다시한번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소리없이 흐느끼며 오열을 하였다. 그런 태평의 옆에서 위로해주며 지운은 말없이 옆에 있어주었다. 그렇게 몇시간이 지나자 장례식장에 태평의 친구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태평아..." "...와줘서...고...맙..흐읍...다..." 말없이 친구들은 태평을 끌어안아주며 다독여주었다. 밝은 모습으로 영정사진속에서 웃고 잇는 태평의 어머니를 본 태평의 오랜 친구들은 묵념이나 절을 하기도 전에 태평 못지않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매우 슬퍼하고 있었다. 그렇게 태평의 친구들이 절과 묵념을 끝내고 슬픔속에서 조촐한 식사를 하고 있을때 였다. 따듯하고 밝은 성품을 가졌던 태평이였던 지라 대학 동기들...극단 동료들 등등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다들 애통한 슬픔을 나누어 주었다. 한참이나 조문객을 맞이 하고 있을 때였다. 화환이 도착하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거기 놔주시고...계산은 이걸로 바로 해주시고..." 영준이였다. 영준의 목소리가 들리자 말자 지운은 일어나 영준을 맞이해주었다. "...안올줄 알았더니..." "...너무 그러지마라..." 영준의 목소리를 들은 태평은 분노에 잠겨 붉어진 눈시울과 얼굴에 핏대까지 쏟을 정도로 붉어진 얼굴로 영준에게 잽싸게 달려가 그의 멱살을 쥐어 잡고 흔들며 말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쳐와!!!" "..." 평소같았으면 태평에 행동에 욕지거리를 하며 태평을 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같이 주먹질을 하고도 남을 성격이였지만 어째서인지 그날만큼은 얌전히 태평손에 멱살을 쥐어잡힌채 그저 흔들릴 뿐이였다. 태평은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않았던건지 그대로 영준의 얼굴을 주먹으로 한대 후려치고 말았다. 조문객들의 시선이 몰리는걸 본 지운은 급히 둘을 때어낸채 길길이 날뛰는 태평을 상주실로 데려가 태평을 겨우 달래고 있었다. "...당신이..불렀군요..." "...미안해요..그래도...알리는게 도리라고 생각했어요...제잘못이에요..." "...지금 이 순간은 당신이 너무 밉지만....탓하지않을게요...당신이니까..." 겨우 진정된 태평이 한숨을 쉬며 잠시 앉아서 쉬고 싶다고 말하자 지운은 조심스럽게 상주실에 나왔다. 영준은 한대 맞은곳이 얼얼 했던것인지 맞은곳을 부여잡으며 부비고 있을 때였다. "...제법 아프네...다컸어.." "...미친놈..." "..." 지운에 욕지거리에도 묵묵히 지운을 바라보던 영준은 입을 열었다. "...고맙다.." "뭐..?" "...못들었으면 말고...그나저나 저기냐..?" 영준은 뻘줌한듯한 자세와 쏟아지는 조문객의 시선을 무시한채 혜정의 영정 사진앞으로 향했다. "...알겠지만...상주한테 인사 못받을 각오는 했지?" "...내가 모르겠냐..? 오늘 사실...칼맞을 각오까지 하고 왓는데...뭘..." 영준은 혜정의 영정사진을 빤히 바라보더니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했다. "...미안하네...이사람아...내가 죽일놈이네... 나중에 내가 가서 만나면..그때 실컷 잡도리질 해.." 영준답게 절이나 묵념은 생략하고 헌화 한개를 성의없게 툭 던지고 향이나 하나 피웠다. 남들이 보기엔 무슨 개념없는 싸가지라고 보겠지만 영준입장에선 최대한 예의를 차린것이란걸 지운은 알았기에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러곤 부조함에 다가서더니 꽤나 두둑한 봉투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내 돈이라면 안받을게 뻔해서...이름은 안썻다..너만 알고 잇으라고..." 영준은 씁쓸한 표정으로 퇴장하려고 할때였다. "..야..." "...응?" "...가서 한번만이라도 안아주고 가면 안되냐?" "..." 지운에 말에 영준은 씁쓸한표정으로 골똘히 생각하더니 지운에게 말했다." "...줄초상 치루고 싶냐...?" 영준은 그렇게 돌아가나 싶더니만 지운에게 다가와 말했다. "...음...고마워..." 그렇게 말하곤 영준은 쓸쓸 하게 장례식장을 퇴장했다. 이윽고 중년의 여성들이 무리지어 들어오며 두리번 거리자 잠시 지쳐 쉬고 있던 태평대신 지운이 맞이하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저...여기가 서혜정 씨...장례식장이 맞나요...? 건너건너 부고소식을 들어서..." "아...맞습니다..잠시만요..." 지운이 상주실로 향해 이 소식을 태평에게 건네자 태평은 일어나 조문객을 맞이했다. "...이모님들..." "아이고...태평아!!!" 그 중년의 여성들은 혜정이 식당일을 하면서 알게된 이모들로 그 이모들 덕에 태평이 그래도 무사히 유년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한참을 끌어안고 펑펑 울던 그들은 다시한번 혜정의 영정 사진앞에 서자 다들 오열하며 곡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늦은 밤쯤이 되었을 때였다. 생각보다 많은 조문객 덕에 지친 태평이 의자에 앉아있자 지운은 음식을 챙겨 상을 차리며 태평에게 말했다. "...태평씨...내키진 않겠지만...식사하셔야되요...이제부턴 체력전이에요...먹어야 견뎌요.." "...먹고 싶지않아요..." 지운역시 태평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알았지만 먹지않으면 안된다는것도 자신의 어머니 장례동안 안먹어서 졸도해본 기억이 있던 지운이였던 터라 억지로라도 먹일 요량으로 말했다. "...그래도...먹어야 한다니까요.. "생각없어요..." "...그러지말고...한술이라도 들어요..." "당신..정말..?! 안먹는다니까요?! 제가 지금..밥이 넘어가겠어요!?" "...." 정신적인 충격과 피로도 스트레스가 한번에 쌓였던 태평인지라 성격이 예민해져 그만 지운에게 소리를 친 태평이였다. "...아...미안해요...당신한테 이런모습이나 보이고...." "그럼..저도 안먹을래요...지금부터 물도 안먹고 밥도 안먹고 태평씨랑 똑같이 할게요..." "?!" 태평은 지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운은 정말 자신도 안먹을 작정을 한건지 음식을 거둬 버릴려고 하자 태평은 말했다. "...알았어요..먹으면 되잖아요...그런식으로 협박하지마요...무서우니까..." 덕분에 같이 겸상을 하게된 태평은 밥을 먹는 내내 눈물에 젖은 밥을 먹었다. 몇번이고 급체를 할뻔했지만 그때마다 옆에서 지운은 태평을 살뜰히 챙겼다. 3일장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3일장 동안 다시한번 혜정의 시신을 본 태평은 울다가 졸도해 실려가 링거를 맞는둥 소동이 몇차례있었다. 발인당일 초췌해진 모습으로 화장터에 도착한 태평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싶을때 지운은 말했다. "..제가 다 알아서 할테니...태평씨는 혜정이 좋은곳으로 보낸다는 생각만해요.알았죠..?" "....미안하고...너무 고마워요...당신없었으면..전 정말 어쩔 뻔했을까요.." 지운은 태평의 친구들과 함께 혜정의 관을 들어 옮기고 혜정이 한줌의 재가 되어 유골함에 봉함되고 납골당에 모셔지는 것까지 전부 해내었다. 물론 비용처리도 전부 지운이 했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나고 멍해진 태평을 데리고 운전을 하던 지운은 말했다. "...복잡한일은 이제 다 끝났고 해결했어요...그리고...태평씨 계좌로...들어온 부의금 전부 입금했어요...조문객 리스트도 따로 정리해뒀으니 인사...문자라도 꼭 돌리시구요.." "...전 이제...남은게 당신하나군요...." "..." "부의금은...당신 가져요....어차피 당신한테 갚아야 할돈도 있고...장례비용...정신없었지만...당신이 다 해준거니까..." "...이건 받지 않을려고요...빚이라 생각 안해줬음해요...좋은 인연은 아니였지만 어쨌든 혜정이...내친구였기도 했고....이건 별개로 칠래요.." 워낙 단호한 지운의 거절에 태평은 어쩔 수 없이 그저 지운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였다. "...저...이대론 일상생활이 좀 어려울거 같은데...휴학을 ...해야될거 같아요...괜찮을까요..? 어렸을적 엄마랑 지냈던 곳들...찾아가보고 싶기도하고.." "...그래요..태평씨가 힘들다면 좀 쉬어가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어요..." 그렇게 태평은 휴학을 하고 극단에 사정을 말해 잠시 떠났다. 지운의 곁에서도 말이다. 지운은 벌써 부터 사무치게 그리웠다. 종종 태평에게 먼저 연락은 왓지만..일부러 먼저 연락을 하진않았다. 태평에게 그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집이되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연락 하는것 자체가 태평에게 영향을 줄까봐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약 두달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오늘도 태평이 보고 싶어 아무것도 손에 잡히 지 않을 무렵이였다. 지운은 오늘도 그렇게 쓸쓸하게 혼자 태평을 그리워 하며 눈을 감았다. 깊은 잠에 빠졌지만 무언가 이상한 감촉이 느껴져 살며시 눈을 뜨니 무언가 몸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한번 잠에서 깨기 위해 눈을 또렷하게 뜨니 누군가 자신의 갈비뼈 아래쪽 화상이 있는곳을 만지고 있는것 같았다. 순간 너무 놀란 지운이 벌떡 일어나자 어색한 웃음으로 태평이 지운에게 말했다. "...아...깼어요...? 미안해요...그사이에...자국이 없어졌길래...몰래 남길려고 햇는데..." "...언제...왓어요...?" "...당신이 잠들어서 잠결에 내이름 부를때요.." 지운은 얼굴이 급 빨개지며 그런적없다고 부정하자 태평은 녹화된 핸드폰 영상을 보여줬다. 빼박증거영상이 나오자 지운은 부끄러운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지못했다. "...제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어떻게 참고 지냈어요?! 연락은 왜 먼저 안했어요?! 보고싶다고..." "...먼저 연락하면...태평씨가 할려던거 못하고 올까봐요....언제든 돌아올 수 잇는 편한 집같은 곳이 되고 싶었달까요?" "..바보...난 또 당신이 그새 마음이 변한건지 너무 걱정하면서 하루도 제대로 못지냈는데..." "...연락 할걸...보고싶다...고..." 지운의 마지막말에 태평은 씨익 웃더니 그대로 지운에게 입술을 부딪히며 말했다. "2달동안 참았더니...더는 못참을거 같아요...그거 알아요..? 당신없는동안 당신 꿈꾸면서 몽정했는데..." "...아...역시 젊네요...전...하라고 해도 못하겠던데..." 태평은 뭐가 그리 급한건지 지운의 옷을 다짜고짜 벗기기 시작했다. 당황한 지운은 잠시 태평을 멈추며 말했다. "...오면 온다고 말해주지...그럼 미리 준비 햇을텐데..." "..아...그런가요...? 알았어요...기다릴게요..." 태평의 능글맞은 웃음에 지운은 당했다싶은 미소를 지으며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서 준비를 끝내고 나오자 말자 지운은 그대로 태평에게 다가섰다. 태평역시 옷을 이미 발가벗은채 기다리고 잇었다. 가볍게 키스를 하며 엉키기 시작한 둘이였다. 지운은 태평에게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아픈덴 없고...? 밥은 잘먹었고요..? 마음 정리는 어때요? 지금은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아..앞으로 뭐하고 싶어요? 그리고..." 궁금한게 많았던 지운의 입을 입맞춤으로 틀어막은 태평은 지운에게 말했다. "...뭐가 이렇게 궁금해요? 그렇게 궁금한거 어떻게 참았어요? 전화하지...솔직히 말하면 아직 나 많이 삐졌어요..." "..그..그건 미안해요..." "보시다시피..너무 건강해서...발딱 서버렸고... 밥도 잘먹어서 기운이 넘쳐서 오늘 당신 안재울거고...마음...힘들었지만...당신이 있으니까...괜찮고... 지금 기분...당신을 빨리 잡아먹고 싶고.. 앞으로...휴학기간 끝날때까지..극단복귀해서 더 열심히 해보려구요...이미 연락해서 이야기 다끝나고..궁금한거 다 이야기 해줬어요 이제 없어요?" 태평에 기나긴 말에 지운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태평은 그대로 지운에게 애무를 시작했다. 습관처럼 하던 이마에서 부터 시작한 애무는 키스로 이어지고 끈적하고 질척한 키스를 나누며 서로를 더욱 탐닉해나갔다. 목부근에 이르러서는 태평에 애무에 지운은 벌써 가버릴것만같은 느낌을 겨우 참았다. 따뜻하고 기분좋은 느낌이 드는 순간 다시한번 태평은 지운의 목에 마킹자국을 남기며 속삭였다. "...2달동안 못봤더니 싹 지워졌네요...앞으로 그럴일 없겠지만.." 반대로 지운올라타 태평이 한 그대로 마킹 자국을 남기려고 하자 태평은 환영한다는듯 양팔을 넓게 벌려 지운을 꼭 끌어안았다. 태평의 품안에서 태평에 목에 자국을 남긴 지운은 말했다. "만족해요..?" "...그럼요...하아...미치겠네요....보여요..? 물 흘러넘치네요.." 태평은 자신의 자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태평의 자지를 본 지운은 그대로 태평의 자지를 자신의 입으로 받아내었다. "흐음...하아..." 태평은 짧은 신음을 내며 지운의 입놀림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태평은 벌떡 일어나더니 지운에게 말했다. "...무릎꿇고 해줄수 있어요...? 왠지 당신이 아래에서 그러고 있으면 더 흥분될거 같아서..." 지운은 흔쾌히 태평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무릎을 꿇고 태평의 자지를 빨며 태평을 올려다보자 태평은 지운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태평은 왠지모를 흥분감과 배덕감이 들었다. 자신에겐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고...그릇이 자신보다 큰 지운이 자신을 위해 지금 밑에서 이렇게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솔직히 지운에게서 알게모르게 느꼈던 열등감마저도 해소되는것같았다. 말그대로 지운을 완전히 자신이 소유한 기분이 확실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당신..내꺼 맞죠..? 그렇죠...?" 태평은 잠시 지운의 입에서 자지를 빼고 묻자 발정이 난듯한 눈으로 태평을 올려다 보던 지운은 그렇다고 끄덕였다. "말로 해요...내꺼 맞죠..?" "...네...전 태평씨꺼 맞아요..." 확답을 들은 태평은 만족하는듯 그대로 다시금 지운을 번쩍 들어 눕힌채 끌어안았다. "당신이 내꺼라서 행복해요...세상이 너무 잔혹해서...당신하나 남았는데...이것마저 빼았아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요.." 지운은 태평의 행동에 왠지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자신또한 태평과 같은 불안감이 은근히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태평이 자신을 떠난다면 말이다. 언젠가는 놔줘야할걸 알면서도 그게 안될거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태평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지운이였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태평을 더욱 안달나게하고 싶지않았기에 참았다. "그동안 나없는동안 어떻게 풀었어요..?" 태평이 야릇한 표정으로 지운의 자지를 만지작거리며 묻자 지운은 솔직하게 말했다. "...알려줄순있는데...대신 태평씨가 협조해줘야 해요.." "그래요..? 할게요...알려줘요.." 태평에 말에 지운은 그대로 자신의 자지를 태평에 입에 들이밀었다. 태평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지운의 자지를 입에 물었다. 그러자 지운은 서서히 리듬을 타며 허리를 움직이며 태평에 입에 박음질을 했다. "하아...하아...흐으..." 발정난 표정으로 자신의 입에 박음질을 하고 잇는 지운을 보자 태평역시 전율에 가까운 흥분감에 젖어들었다. 서서히 턱이 아팠지만 꾹참으며 지운이 어떻게 하나 지켜보던 때였다. "...쌀거같은데...싸고 싶은데 싸도 되요..?" 지운에 말에 태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움직임이 빨라지던 지운은 그대로 태평의 목젖까지 자지를 깊게 박더니 그대로 사정을 하는 것이였다. 오랜만에 사정을 하는것인지 쭈욱쭈욱 하고 걸쭉하고 비릿한 무언가가 자신의 목구멍을 타고 직속으로 내려가는게 느껴지는 태평이였지만 사정을 하며 눈이 풀려있고 꿈뜰꿈뜰 거리며 계속해서 사정을 하는 지운의 행동덕에 태평은 흥분되 미칠 노릇이였다. 그렇게 사정을 끝낸 지운이 자지를 빼내려고 하자 태평은 그대로 놓아주지않고 쪽쪽 빨아 지운의 자지 안에 남았있던 마지막 한방울 까지 빨아내었다, "윽?!흣!?" 예상치 못한 태평에 행동에 지운은 엄청난 오르가즘과 가려움때문에 몸부림쳤지만 딱히 뭘 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만족한듯 태평이 놓아주자 지운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아...하아...미안해요...갑자기...거기다 싸서...사실....매번 혼자 풀때 상상했어요...그때 처음으로 할때 태평씨 입에 싸버릴뻔한 날...얼굴에 묻은거 핥아 먹을때...한번꼭 먹이고 싶었어요...너무 변태같았나요...?" "...아뇨...너무 좋았어요..지금 당신께 제 몸에 들어온거니까...사실 불공평했거든요...난 맨날 당신 한테 내거 주는데...당신은..밖에만 하니까.." "그래도...냄새 날텐데..." "...상관없어요..." 태평은 그대로 지운의 다리를 벌려잡으며 삽입을 시도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지운의 뒷구멍덕에 태평은 금방이라도 사정할뻔했지만 애써 참으며 지운을 내려다 보며 박음질을 시작했다. 지운역시 오랜만에 태평의 자지맛을 보니 눈이 뒤집혀버릴 것만 같았지만 추한모습 보이고 싶지않아 최대한 참으며 태평을 올려다 보았다. "..흐으...하아...하아...흐으..하아..." "..하아..하..좋아요...? 이젠..제법...좋아하네요...? 아파만하더니.." "...그..그건...아..아파요..하..지만...태평씨가...자극되는 곳을 잘 찔러서...흐읏!?" "아~ 이렇게?" 태평은 능수능란 하게 지운의 스팟을 공략하자 지운은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횡설수설하며 좋아서 온몸을 부르르떨었다. 그런 지운의 모습에 이제는 자신이없으면 살지 못할 몸으로 길들이고 잇다는 생각에 태평은 엄청난 정서적 만족감이 들었다. 그런 자신의 성과를 확인해볼겸 잠시 멈춘 태평은 지운에게 말했다. "..후우...올라타봐요..저번처럼 혼자 흔들어서 느껴봐요.." 태평이 지운의 위에서 내려와 눕자 잔뜩 발정난 지운은 그때 처럼 태평에 위에 올라타 방아를 찌으며 눈이 풀린채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태평은 그대로 지운의 허리를 부여잡은채 말했다. "...별로 안좋아 하는거 같은데...그만할까요..?" 그말에 지운은 이성이 살짝 풀린듯 태평에 양손을 그때 처럼 침대에 자신의 양손으로 눌러 고정시킨뒤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이면서 스스로 박혔다. "알았어요..미안해요...사실 궁금했어요..정말로 좋아하는게 맞는건지..아...근데...저번에도 말했지만..이러고 있으니...반대로 당신한테 따먹히고 있는거 같아서...되게 묘하게 야하고..좋네요..후우.." 지운에게 양팔을 제압당한채 움직일 수도 없이 지운이 찍는 방아를 그대로 느끼던 태평은 절정이 다가온듯 지운에게 말했다. "...이제...쌀거 같아요...저..오래 참아서...좀 많이 나올거 같은데..." 태평에 말에도 아랑곳하지않고 계속 방아를 찍는 지운덕에 태평은 말했다. "...그럼 동의하신거죠...? 안에 할게요...흐읏?! 하아..?! 하...흐...으..후우...흐.." 지운은 꿈틀꿈틀 격동하는 태평의 자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저번과는 느낌부터가 다른 힘차게 내벽을 때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정말 말그대로 많이 참은것인지 생각 보다 많은 양이 안에서 터져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왜요?ㅋ 놀랐어요..? 말했죠 ...많다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싼건지 서서히 줄어드는게 느껴진 지운은 그대로 일어나자 태평의 자지가 빠지며 뚝뚝이아니라 주르륵 하고 지운의 허벅다리를 타고 흐르는 태평의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리와봐요..." 혼자만 보기 아까웠던 태평은 잠시일어나 지운을 데리고 전신거울 앞으로 향해 지금 자신의 흔적이 흐르고 잇는 지운의 뒷태 허벅다리를 보여주었다. 어찌나 많이 싸지른것인지 거울을 통해 보여주는 그 순간에도 주르륵 계속 흐르고 있었다. "..아...야하네요..." "...당신이 요부처럼...흔들어서 받아놓고...부끄러워하면..되나요..?" 태평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지운은 이제는 태평에 장난을 능숙하게 받아치며 말했다. "...그러게요...아까는 제가 왜그랬는지...제가봐도 야하긴했어요..." "당신이 어떤 모습이던 난 다 좋아요.." 늘그랬던 것처럼 태평이 지운의 이마에 쪽하고 뽀뽀를 하자 지운은 태평목에 남긴 자국을 어루 만지며 말했다. "...진짜..괜찮겠어요..? 저야 뭐...집에서 일한다 쳐도...밖에 많이 돌아다니 실텐데.." "...애인이 남겼어요. 하고 말하게요...그게뭐?" 생각보다 당돌함에 지운은 그저 웃음밖에 안나왔다. "...그렇게 웃는거 오랜만에 보니까...너무 좋네요..." 태평이 두팔을 벌리자 늘그랬던 것처럼 지운은 태평의 품에 안겼다. 그러곤 늘 그랬던 것처럼 사이좋게 욕실로 향했다. ============================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저작권 : 마늘바게트 님. ============================
2026-04-21
소설방
벚꽃 필 무렵-9- (펌)
잠시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뜬 태평은 옆에 있어야할 지운이 보이지않았다. 태평은 그대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욕실은 누군가 이용한듯 사방에 물기가 있었다. 그대로 몸을 돌려 1층으로 내려간 태평은 지운의 화실쪽에서 소리가들려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나 그곳에선 지운이 집중하여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인기척에 지운이 돌아보자 태평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깨우시지...같이 씻고 싶었는데.." "...너무 편하게 곤히 주무시고 계신거 같아서요...깨우고 싶지않았어요.." "그랬어요?" 태평이 다시한번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자 지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태평에게 다가갔다. "안추워요..? 얼른 옷입어요" 여전히 발가벗은 몸으로 자신에 앞에 서잇는 태평에게 지운은 걱정되는듯 물었다. "그러고보니 아직은 쌀쌀하네요.." 태평은 그대로 뒤돌아서서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서 샤워를 한후 옷을 입고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한참 그림에 집중하는 지운을 보자 격렬한 행위덕에 피곤하지않을지 싶어서 커피를 한잔 내려 다시금 화실로 향했다. 그윽하고 고소한 커피향취가 방안에 은은히 퍼지며 태평은 지운에게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미안해요..이제 정말로 전시회가 코앞인데...제가 당신을 방해 했군요.." "아..아니에요...어차피 얼마 안남았었거든요...보다시피 잘되가고.." 지운은 거의 완성되어가는 그림을 뒤로 한채 잠시 일어나더니 화실 책상에 서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꺼내어 들었다. 그걸 들고 그대로 태평에게 향해 그것을 건네자 태평은 물었다. "이게...뭐죠...?" "전시회 초청장이에요...태평씨가 꼭...와줬으면 하거든요.." "..." 태평은 잠시 아무런 말없이 침울한 표정으로 초청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태평을 본 지운은 걱정되어 태평에게 물었다. "...태평씨..? 혹시 별로 안내키시면.." "아니에요...꼭...가고 싶은데....." 꼭 가고 싶다는 말과 다르게 자신없는듯한 말투와 행동을 본 지운은 태평에게 물었다. "...걱정...되는게 있나요...?" "사실 어쩌다 그 망할인간한테 들었는데...듣자하니...아무나 막 갈수잇는 자리가 아니라고 들었어요...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모인다고..." "그게...왜요..." "별볼일 없는 제가 가도 되는 자리가 맞는건지...당신한테 폐를 끼치는게 아닌지 걱정이 되거든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태평이 살포시 초청장을 내려놓으려하자 지운은 다시금 태평의 손에 초청장을 구겨쥐어 주며 말했다. "...꼭와줘요...이렇게 부탁할게요.." 지운이 태평에게 사정사정하는 듯 하자 태평은 급당황한채 지운의 행동을 만류햇다. "아...!? 당신이 이러면 저만 나쁜 사람이 된거 같으니까...그러지마요...꼭...갈게요!" 그렇게 지운은 태평으로부터 꼭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지운은 사실 태평이 꼭 오길 바라는 이유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전시회 당일이 되자 지운은 수많은 유명인사와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엔 태평이 언제쯤 오나 기다릴때 쯤이였다. 입구쪽에 약간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 지운은 오랜만에 보는 지인이 보여 그쪽으로 다가섰다. "아...그니까...니가 들어가라니까? 너 연예인 보고 싶었다며?" "아니?! 그니까!! 그거는 맞는데...애초에 초대된건 너희 아버지고 니가 아버지 대신온거라 니가 들어가야지..아무연고도 없는 내가 그럴 명분도 없고 뭘..." "난 괜찮다니까?! 그니까 니가 가라고..." 지운은 티격태격하고 있는 두 청년에게 향하더니 그중 한명에게 밝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진규씨? 오랜만이에요...장사장님은 안오셨나요..?" "아...네 안녕하세요...그게 꼰대가.." 꼰대라는 말이 나오자말자 승주는 진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볍게 툭치자 금새 말을 정정하는 진규였다. "음음...아버지가...해외여행 가셨거든요...그래서 제가 대신왓는데...어차피 전 그림도 문외한이고...관심도 없고해서...연예인 보고 싶다는 이놈보고 들어가라는데..말을 안듣네요.." "..아..." 승주는 창피한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지운은 상냥히 웃으며 보안요원에게 말했다. "아는 지인분들입니다..신분 보증할테니 두분다 들여 보네주세요." 원칙대로라면 안될일이였지만 어디까지나 초청인원은 주최자의 권한이였기에 스무스하게 진규와 승주는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아...감사합니다..." "그래요..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고...장사장님한테...매번 감사하다고 대신 인사부탁드려요.." 진규와 승주가 아직도 티격태격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지운은 여전히 보이지않는 태평덕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어째서 인지 애간장이 타는듯했다. 그 순간이였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누군가 보였고 반가워질려던 찰나였지만 지운은 이내 표정이 가라앉고 말았다. "...반갑다 인사를 안해??" 영준이였다. 어쨋든 가족사진 미션을 클리어 했기에 약속대로 초청장을 보냈지만 이미 너무나도 무책임한 영준의 모습에 정이 떨어진 지운은 감흥없는듯 말했다. "어. 좋은시간보내라" 그렇게 말하곤 돌아서자 영준은 섭섭한듯 말했다. "...야~ 아직도 화났냐?~ 왜그러냐~ 막말로...남의 가정사지...그게 너가 그렇게 크게 화날일이야? 그것도 나한테? 섭섭하다~" 지운을 너무나도 잘알았던 영준이였기에 이번에도 능구렁이처럼 능글맞게 넘어가려던 찰나였다. "...남의...가정사..?" 영준은 불편해 하는 지운의 표정을 보자 이번엔 자신이 말실수를 한거 같아 아차싶어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물러서진 않았다. "...그래..남의 가정사..." "그래...남의 가정사지...너한테 난...25년도 넘은 친구도 아닌 그저 '남' 이라는 거구나...알았다. 즐거운 시간 보내" 그제서야 정말로 자신이 외통수를 둔걸 알아차린 영준이 급히 사과해도 지운은 뒤도 돌아보지않고 걸어가자 영준은 그런 지운의 손목을 잡고 그자리에 멈춰 세우며 말했다. "...너 나한테 왜그러냐?" "놓고 말해" "...왜이렇게 화가났냐고? 미안하다잖아?" "알겠다니까?! 놔" "야..잠깐 따라나와...이야기좀 해" 영준이 가기싫다는 지운을 억지로 끌고 갤러리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질질 끌려온 지운은 그 자리에서 영준과 언쟁을 했다. "그래...내가 말실수 한거 인정해...그래서 미안하다잖아?! 근데 그게 니가 그렇게 까지 화낼만할 일이야?!" "내가 그동안 너한테 화내거나 듣기 싫은 소리 한적 없었지? 근데 이번엔 해야겠다. 제발 인간좀 되면 안되냐!?" "뭐? 인간?!" "그래 인간!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야!!" 태평에 말에 제대로 빡친 영준이 지운의 양어깨를 쌔게 밀며 말했다. "...친구도 없던 새끼 친구 해줬더니...너 많이 컸다?" "..." 영준은 고등학교 시절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던 지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유일한 친구' 가 되어주었고 그를 빌미로 지운으로 부터 여지껏 무엇이 되었든 이득을 갈취하고 있었다. 지운은 알면서도 이미 고등학생시절부터 '친구' 라는 가스라이팅 되어있던 때라 지금까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했다. 하지만 이번엔 지운자신이 아닌 영준 본인의 피붙이가 확실한 태평과 그의 어머니인 혜정에게 똑같이 쓰레기짓을 하는덕에 이제는 어느정도 마비되었던 이성이 돌아와 지금 이렇게 영준과 대적하고 있던참이였다. "...그래..많이 컸지...우리 더이상 애새끼들도 아니니까...너도 제발 정신차고 인간이 되라" 할말다한듯 지운이 돌아서자 영준은 지운은 멱살을 잡고야 말았다. 급작스러운 영준의 행동에 당황한 지운이 영준의 손을 때어내려 했지만 잘되지않았다. 영준은 지운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바람에 지운의 옷깃이 풀어 헤쳐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옷깃사이로 보이는 선명한 마크 자국에 영준은 빤히 바라보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끼가 어쩐지 자신감이 넘친다더니...애인생겼냐? 꼴에 밝히냐?" "놔!!" 지운은 더 이상 영준에게 욕보이고 싶지않아 전시회고 뭐고 사고칠 생각으로 주먹을 꽉 쥔 순간이였다. 언제 온것인지 멀끔한 정장에 정갈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타난 태평이 그대로 멱살을 잡은 영준의 손을 잇는 힘껏 비틀어서 꺾자 영준은 고통스러워 하며 지운의 멱살을 놓았다. "아!! 아..!!! 어..어떤 새끼가!?" "..." 태평은 정말 누구하나 죽일것같은 무서운 눈빛으로 영준을 쏘아보며 침묵속에서 그저 영준의 손을 비튼채 서있었다. "아!! 놔!! 이새 끼야!!" 영준이 어떻게든 빠져 나오려고 했지만 젊은피인 태평을 감당하긴 힘들었던건지 안간힘을 쓸때였다. "..태평씨...놔줘요..." "..." 태평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지운을 쳐다보았지만 다시한번 지운이 간곡히 부탁하자 태평은 놓아주며 말했다. "...제삿밥에 향냄새 맡고 싶지않으면 앞으로 접근하지마라...진짜 죽여버린다?" "..." 영준은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뻘쭘한듯 다시금 갤러리 안으로 슬그머니 도망쳤다. "...미안해요.." "당신이 왜 사과해요?!" "보고 싶지않았을텐데...약속은 약속이라...초청장 줬거든요...덕분에 태평씨 기분만...망친거 같네요.." 태평은 아무런 말없이 속상한듯 풀어 헤쳐진 지운의 옷깃을 다시금 저며 주며 말했다. "...더 빨리 올걸...늦어서 미안해요..제가 있었더라면 근처에도 못오게 했을건데..." "...아니에요...그나저나...오늘...너무 멋있는데요...?" 지운은 다시한번 태평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르스러운 정갈한 정장 차림에 멋드러진 헤어스타일 까지 말이다. "...아...사실...음...." 태평이 곤란한듯 어쩔 줄 몰라하자 지운은 태평에게 걱정하지말고 말해보라하자 태평은 말했다. "...초청장은 받았고...최대한 멋지게 하고 가고 싶었지만...그럴만한 사정이 못되었는데요...마침..." 태평이 눈빛으로 다른곳을 가리키자 그곳엔 두리번 거리는 태평의 동기 몇명이 보였다. "...도움좀...받았어요...이 옷은 저기...지명이....그리고 머리는 주영이 누나... 그리고 몇명도...어쩌다보니...음...워낙 당신이 유명하니까...음.." 태평이 이야기를 힘들게 꺼내지 못하자 그런 마음을 헤아린 지운은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요!! 저....저..선생님...아니...거장님...아니...긴장해서...하아...화백님 팬입니다...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요...정말 감사합니다...여기 서있지 마시고...다들 안으로 들어가시죠? 정식으로 초청한걸로 해드릴게요.." 지운에 말에 다들 놀라며 눈이 휘둥그래 졌다. 태평은 미안하면서도 지운의 행동에 그저 감사하며 지운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태평은 다시한번 놀랐다. 정말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들이 지운의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마치 사교파티를 연상 시키는듯 갤러리 안은 얼굴만 봐도 알만한 사람들이 쫙 깔렸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이였다. 지운이 태평의 옷깃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음..?" "사실... 태평씨보고 꼭오라한 이유가 있었어요..따라오세요.. 그렇게 지운이 향해 도착한곳은 4명의 중년 남성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안녕하세요...김감독님...오랜만입니다.." "아~ 문화백! 오랜만입니다~ 잘지냈어요? 그나저나..역시 명불허전이네요...가능하다면..저 작품은 내가 사고 싶은데..." "죄송합니다....오늘 경매그림 빼곤 전부 갤러리 소유라서요..." "그거 아쉽구만...허허허...음..? 그나저나 옆에 그 젊은친구는..??" 태평은 동공에 지진이 나고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극찬을 아끼지않던 영화감독인 김준희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으...저..저는..서.." 긴장하고 있는 태평 대신 지운이 부드럽게 개입하여 준희에게 말했다. "아~ 이번에 제가 후원하고 있는 배우지망생 친구에요..." "이야...문화백이...이런것도 할줄 알았나...? 의도적으로 지금 나한테 소개 시켜주는거죠??" "아이고...들켰나요? 하하하!!" 지운이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조용한 목소리로 태평에게 말했다. "...긴장 풀어요...자기소개 한번 하셔서 얼굴도장찍으세요.." 지운의 말을 들은 태평은 긴장을 가라앉힌채 준희에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태평이라고 합니다. 문화백님께 들은대로 후원을 받고 있고...배우...가 되기위해 현재는 연극영화과를 재학중입니다.." "그래요? 문화백이 후원까지 할정도면...기대대는 구만...볼 수 있으면 보자고요?" 악수를 요청하는 준희덕에 다시한번 태평은 심장이 벌렁벌렁거렸지만 정중히 악수를 하고야 말았다. 그러던 중 준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년의 남성중 한명이 불편한듯한 표정으로 비아냥 거리며 말했다. "고고한 예술가인척은 혼자 다하더니..결국 청탁자리야? 참나 웃겨서.." 또한명의 유명 영화거장 송예환 감독이였다. 지운은 예전 과거에 있던 일때문에 예환과는 껄그러운 관계였다. "에이!? 거참?! 송감독 아직도 문화백한테 삐져 있는건가!?" "이사람아!? 삐지긴?! 내가 언제..." "샴페인 적당히 찌그리고...자자...절로.." 분위가가 안좋아 질걸 감지한 준희가 예환의 등을 떠밀며 자리를 피하자 긴장하고 있던 태평은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듯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 "네..?!" "이럴거였으면...귀뜸이라도 해주시지...제가 얼마나 놀랏는지...알아요..?!" "미..미안해요..전 그저.." 지운이 미안한듯 고개를 숙이자 태평은 급당황해 하며 말했다. "그..그런뜻은 아니고...그냥 좀 놀라서 그랬어요...하하.. 그나저나...송예환 감독하곤 무슨 안좋은일이라두...?" "그냥 좀 과거이야기에요...제 그림을 이용해서 세금포탈할려고 청탁을 하시더라고요..." "그..그래서요...?" "...술자리였는데 그대로 얼굴에 술뿌리고 나왔거든요..." 지운의 이야기를 들은 태평은 입이 쩍 벌어진채 두눈을 깜빡였다. "...그림은...제가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제겐 아주 소중한 삶 그자체 였으니까요..." 태평은 그런 지운을 빤히 바라보더니 작게 박수를 쳐주며 말했다. "...정말 멋있어요...그래요...그 느낌 잘알거 같아요...마치 제가 연기를 할때 살아 숨쉬는걸 느끼는것 처럼... 그런거죠..?" "...맞아요.." 지운이 방긋웃자 태평역시 지운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이였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나르던 한 청년이 앞을 못보고 지나가다 지운을 툭 치고 말았다. 덕분에 밀려난 지운이 살짝 넘어지려고 하자 그런 지운을 붙들으며 세워준 태평은 황당해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던 청년에게 따지기 위해 다가섰다. "이보세요?! 사람을 쳣으면 사과하셔야죠!?" "..아?! 그..그랬나요?! 죄송합니다..." "...음...?" "..어...?" "우리 구면...?인가요...?" 태평은 마치 첨보는게 아닌듯 빤히 쳐다보자 그 청년 역시 태평을 어디선간 본듯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을때였다. "OO사단 54연대 3대대 8중대 3소대?! 맞죠?! 아..맞지?!" "아?! 그러보니?!" 둘은 잠시 빤히 바라보더니 무언가 생각난듯 두명다 눈이 휘둥래지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했다. "백종우!?" "서태평?!" 지운이 다가와 무슨일인가 보자 태평은 오랜만에 보는 군대 동기라며 지운에게 말했다. "아니?! 니가 여기 왜있는거야!?" "그..그게 사정이 좀있어서..." "많이 무겁냐?! 좀 도와줘??" "아냐!! 괜찮아...그냥 둬..." 그렇게 태평과 종우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회포를 풀고 있을때였다.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서 떠들고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그 한마디의 목소리가 들리자 종우는 온몸에 털이 쭈뻣서는듯 긴장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죄송합니다...금방가겠습니다.." 어찌나 긴장을 한건지 태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빠르게 멀어진 종우를 보고 태평은 말했다. "...군대에서도 그렇게 갈굼을 당하더니...사회에서도 에휴.." "많이 친했나요...?" "..아..네...뭐...좀 불쌍해서 챙겨줬어요...저놈이랑 제 맞선임이 진짜 에이스중에 에이스였지만...좀 또 라이기질이 있었거든요..아물론 종우 저놈이 어리버리 했다지만 유독 쟤만 개잡듯패던지..결국 중간에 보다못한 저를 포함한 동기들이 마편써서 전출 갔지만요.." 태평은 소소한 썰을 풀어주며 지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사히 전시회가 끝나자 지운은 태평과 집으로 향했다. 늦은 밤이 되어버린 밤공기가 차가웠고 데려다주고 싶었던 지운은 운전을 하였다. 지운이 태평이 사는 오피스텔로 향하려고 하자 태평은 말했다. "...집에 안갈래요..." "네...? 피곤하실텐데요...?" "...어차피 집에 가봐야...불꺼진 차가운 공기만 돌거든요..." 지운은 잠시 방향을 바꾸며 태평에게 물었다. "그러면....저희집에...." "...저 졸업하면 그냥 당신이랑 같이 살면 안될까요...? 월세 꼬박꼬박 낼게요....지금이야 학교랑 극단이 가까운 당신이 구해준 오피스텔에서 살지만...혼자 있으면...여러생각이 들어서 머리가 아프거든요.." 지운역시 혼자 덩그러니 그 넓은집이 싫었고 무엇보다 이제는 태평과 함께 지내고 싶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태평은 기분이 좋아진듯 말했다. "...그럼 오늘은...당신이랑 같이 자고 싶어요.." 같이 자고 싶다는 말에 지운이 안색이 급빨개지는걸 목격한 태평은 다시한번 장난기가 발동되어 지운에게 속삭였다. "걱정마세요..오늘은 당신도 피곤하니까...'섹스'하자는게 아니고...그냥 정말단순히 같이 자고 싶을뿐이에요...아...물론...장담은 못하지만..." "아..아!! 우..운전하는데!? 그...그러지마요!!제발..." "아...미안해요...당신만 보면 저도모르게 장난치고 싶어서요...." 어느덧 지운의 집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태평이 먼저 내려 지운의 차문을 열었다. "음..? 왜그래요..?" "..." 태평은 그대로 지운의 이마에 쪽 하고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얼굴이 붉어진 지운이 였지만 이번엔 지지않았다. 지운역시 그대로 태평에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후...오늘 자기는 글렀네요..?" 태평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건네었다. 지운역시 부드럽게 웃으며 태평의 손을 붙잡으며 차안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들어가자 말자 둘은 격렬한 키스를 하며 서로의 옷을 찢어버릴듯 벗기고 있었다. 그렇게 옷을 현관입구에서 부터 하나둘 서로를 벗기던 둘은 어느새 벌거벗은 몸이 되었다. 다시한번 진한 키스를 하며 태평이 지운을 번쩍 들어 키스를 하며 소파로 향했다. 소파에 눕혀진 지운위에 올라타 키스공세를 하던 태평은 무언가 생각난듯 지운에게 물엇다. "...아까 낮에 그 망할인간이 당신 멱살 잡았을때...옷깃이 풀어 헤쳐져있던데...이거...그 인간도 봤어요...?" 태평이 손가락으로 자신이 남긴 자국을 꾹꾹 누르면서 묻자 지운은 부끄러운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히죽 입꼬리가 올라간 태평은 지운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거 누가 남긴건지 말했어요..?" "...아뇨...그건..." 태평은 무언가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더니 지운에게 말했다. "..다음에 보면 내가 남겼다고 말할 생각인데...." "?!" "이제 니사람 아니고 내꺼야 라고 확실히 보여줄려고요.." 지운이 곤란한듯한 표정을 보이자 태평은 그런 지운을 안심 시키며 말했다. "걱정마요...당신이 곤란하다면...안할거니까...하지만..." 태평은 다시한번 그 자국에 자신의 영역표식을 하듯 마킹자국을 또 남기고 있었다. 지운역시 따끔따끔했지만 태평을 말리지않으며 그저 묵묵히 태평의 행동을 받아들였다. 다시한번 더욱 진한 자국이 남긴것에 만족한 태평은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않고 그대로 지운과 포개진 상태로 말했다. "...하고싶어서 발딱 서버리긴 했지만...오늘은 당신이 피곤할테니...그냥 넘어갈게요... 사실 저도 오늘은 발도 좀 아프고..." 정말로 피곤했던 지운은 태평의 배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였다. "고마워요... 태평씨...그래도...씻고 주무셔요" 정말로 피곤했던 건지 지운은 씻기 위해 일어났지만 눈 붙인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잠들어버린듯한 태평을 본 지운은 조심스럽게 담요를 찾아와 태평의 발가벗은 몸위에 덮어준채 씻으러 향했다. 샤워를 하던 지운역시 중간중간 꼬박꼬박 졸았지만 이내 샤워를 전부 끝내었다. 혹시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거사 준비 역시 말이다.. 물기를 닦으며 나온 지운이 샤워하고 자라며 태평을 깨웟지만 깊게 잠든 태평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않았다. 그렇기에 하루쯤은 괜찮겠지 싶어 그대로 두고 2층 자신의 방으로 향하려던 지운은 잠시 멈춰 태평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대로 태평이 누워있는 소파로 향했고 태평의 품안에 파고 들었다. 그러자 인기척에 잠에서 깨어난 태평은 잠결에 말했다. "...음...어디갔다왓어요..." "아!? 깻어요!? 미안해요...태평씨 옆에 있고 싶어서..." "...아뇨..괜찮아요..좋아요..." 태평은 잠결에도 팔을 번쩍 벌려 들어오라는듯 자세를 취하자 지운은 그대로 태평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씻고 왓네요..좋은 냄새가 나요.." 잠결에 말을 흐리는 태평에게 안겨있던 지운은 왠지모르게 더욱 흥분되었다. 심장박동수는 빨라지고 태평과 다르게 오히려 그덕에 정신이 더 맑아지는 듯한 지운이였다. 지운은 점점 흥분감에 젖어들어 자신이 얼굴을 파묻고 있던 태평의 가슴근육을 느껴보았다. 쿵~쿵~ 하고 일정하게 뛰는 태평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결국 지운은 손을 뻗어 태평의 자지를 만지작 거리고 말았다. 단지 조금 만지작 거렸을뿐인데 금새 발기해버린 것을 본 지운은 역시 젊은피는 다르구나 싶었다. "...음...거기만지면...발딱 서버리는데....음.." 반쯤 잠결에 잠긴 태평이였지만 다느꼈던 터라 태평은 그만 자지가 발딱 서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지운의 손장난에 서서히 찔끔찔끔 물이나오자 태평은 말했다. "...당신..오늘 안피곤하군요...?" 태평의 말대로 이미 잠이 완전히 달아나버린 지운은 계속해서 흥분한 상태로 태평의 자지를 계속 만지작 거렸다. 얼마안가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지운은 결국 태평의 위에 올라타고야 말았다. 급작스러운 지운의 행동에 태평역시 서서히 잠이 깨더니 자신의 위에 올라타고 있는 지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도 서버렸네요..? 이거...우리 자긴 글렀죠?" 지운은 아무런 말없이 소파옆 테이블 서랍에서 젤을 꺼내어 태평의 자지와 자신의 뒷구멍에 치덕치덕 바르더니 그대로 태평의 자지를 올라타고야 말았다. "읍...하...읍...." 이번 한번 해서 벌어졌지만 여전히 통증이 느껴지는 지운이였지만 이내 태평의 자지를 모두 받아버리고 말았다. 태평역시 지운이 먼저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더욱 흥분감이 느껴지며 촉촉하고 따듯한 지운의 뒷구멍 쪼임이 느껴졌다. 올라탄덕에 아주 깊숙히 들어간덕이였을까 조금만 꿈틀거려도 쪼임이 느껴졌던 태평은 힘겹게 쉼호흡하는 지운에게 말했다.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에요..?" "..저..전,..하아...괜찮아요...흐으.." 말이끝난 지운은 그대로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며 스스로 태평의 자지에 방아를 찍자 태평역시 위에서 잔뜩 발정난 표정으로 자신의 자지에 올라타 느끼고 있는 지운을 보고 있자니 흥분감이 계속 해서 느껴졌다. 무엇보다 급작스럽게 시작된 섹스가 이번엔 지운이 시작하고 지운이 리드하고 있다는 것에 말이다. "하아...하아..흐으..하아.." "당신...그렇게 야한표정으로 위에서 그러고 잇으면...흐으...사람 미치는데...흐으.." 태평은 지운의 꼭지를 문질거려 자극을 주기위해 양손을 뻗어서 꼭지를 만지자 지운은 그대로 태평의 양손은 잡아 소파에 고정시키며 그대로 방아찍기를 이어나갔다. "...하아..하아..그...그러면...먼저 쌀거 같아서..죄송해요..하아.." "...미..미안해요...아...근데...이것도...이거 나름대로...후우..." 태평은 지운에게 제압된것같은 상황에서 지운이 자신의 자지에 올라타 방아를 찍고 잇는 상황이 시작적으로 무척이나 흥분되었다. 마치태평이 박고는 있지만 반대로 지운에게 먹히는 기분같은게 들었기 때문이였다. 더군다나 이렇게 적극적으로 리드를 하는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방아 찍기를 하던 지운은 잠시 멈추자 태평이 물었다. "하아..하아...힘들어요..?" "...아..아뇨...쌀거 같아서요...이대로 싸면 태평씨 배랑 가슴에 묻으니까.." "전...괜찮아요..그러니까 계속해요..." 태평이 괜찮다는 말을 하자 지운은 계속해서 방아를 찍었다. 점점 절정이 다가오고 잇는 듯한 지운의 표정을 본 태평역시 절정이 다가오는 듯했다. "윽!? 하...읏...으..." 결국 지운은 태평의 배와 가슴에 싸지르기 시작했다. 쭈욱쭈욱 뽑아져나오며 비릿한 냄새가 맴돌때 였다. "하아..저도 나와요...!! 하아!! 흐으!! 하..." 태평역시 그대로 지운의 안에 싸버리고 말았다. 지운은 올라타있던 덕인지 그때보다 더한 꿈틀거림이 느껴지며 무언가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태평의 정액이였다. 몇번이고 꿈틀거림이 느껴지고 그대로 태평의 자지가 중력에 의해 빠져나오자 지운의 뒷구멍에선 뚝뚝 태평의 것이 흘렀다. "하아...결국 해버리고 말았군요..." "미..미안해요..." "사과를 왜해요?! 오늘 당신한테 완전 ' 따먹힌거' 같아서 더 흥분됬는데..." 태평의 저돌적인 표현에 지운은 찔렸지만 은근히 묘한 흥분감이 들었다 자신이 리드해서 태평과 관계를 했다는것에 말이다. "...저때문에...어쩔 수 없이...씻고 자야겠네요...가슴이랑..배가..." 태평이 씩 웃으며 두팔을 벌려 안기라는 행동을 하자 지운은 그대로 안겨버렸다. 덕분에 지운의 끈적한 흔적이 비릿한 향을 내뿜으며 둘사이의 몸에 비벼졌다. "...이러고 있으니까..진짜 야하네요..." 태평에게 안겨 있던 지운은 잠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대로 태평의 목쪽으로 향했다. "...남겨도 되요...?" 태평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운은 태평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태평에 목에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말았다. "...진짜..괜찮은거죠...?" "...언제해주나..기다리고 있었어요...사실..." 태평은 잠시일어나 거울을 보며 아주 흡족한듯 실실 웃으며 말했다. "...저 그럼 이제 당신껀가요...?" 지운은 베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태평은 그대로 지운에 이마 입술을 쪽하고 가져다 대었다. "...씻으러 가요 같이.." 그렇게 둘은 사이좋게 욕실로 향했다. ============================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저작권 : 마늘바게트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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